시원한 계곡을 찾는 이들은 발가벗은 영혼으로 달려간다.
열기의 숨결 아래서
초여름의 태양이 지평선을 녹일 때,
나는 열기의 중량을 피부로 읽는다.
공기는 진동하며 아스팔트 위로 기어오르고, 계곡의 물소리는 숨 막힌 도시를 향해 메아리친다.
땅은 스스로를 용광로로 개조하고,
인간들은 땀으로 쓴 연가를 바친다.
하지독보(夏至獨步)
들판을 태우는 해 작열하네
어떤 이 맑은 내를 찾아가고
비 올 때 소리 나는 곳에
열기 녹이는 가마 있도다
작야일염염(灼野日炎炎)
유인탐청천(有人探淸川)
우래유성처(雨來有聲處)
열기유용전(熱氣有鎔煎)
월하시정
시원한 계곡을 찾는 이들은 발가벗은 영혼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물속에 몸을 담근들 뜨거운 시간을 식힐 수 있을까? 쏟아지는 소나기는 천지를 은빛 칼로 가르지만, 그 뒤엔 더욱 응축된 습기의 무게가 기다린다.
우리는 모두 태양 아래서 녹아내리는 초콜릿 조각들. 형태를 잃을수록 달콤해진다는 역설을 깨닫기 전까지.
에어컨의 신성한 부저음은 현대의 주술이 되었다.
18도로 얼어붙은 실내에서 인간은 외부의 불길함을 관찰하는 유리관 속 표본이 된다.
에어컨의 찬가
차가운 바람이 귓전을 스칠 때
나는 얼음 섬 위의 난파자가 된다
서늘함이 삼십 분을 지배하면
한 조각의 전기요금이
미래의 적산계를 채운다
냉방은 문명의 기적
땀방울이 이마에서 굴러
존재의 염증을 증명한다 -
우리는 '설정온도'라는
숫자 신앙으로 찜통 같은 현실을 피한다.
마치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듯 영원한 쾌적을 갈구한다.
그 안에는 에너지의 역설이 가득한데도,
우리는 그것을 '진보'라 부른다.
위트는 이 지독한 열기에 스며든다.
"더위는 자연이 주는 무료 사우나 이용권"이라 위로하며, 녹초가 된 몸으로 웃음을 짜낸다.
땀에 절은 셔츠는 현자(賢者)의 도포가 되고, 선풍기 앞에서 펼치는 팔은 구원을 향한 기도 자세다.
창밖에 소나기가 쏟아진다. 빗줄기는 뜨거운 콘크리트를 마주한 순간 증기로 변해 하늘로 솟구친다.
나는 문득 깨닫는다.
열기는 오히려 우리를 가장 투명하게 만든다는 것을.
땀은 가면을 녹여내고,
소나기는 세속의 먼지를 쓸어간다.
진정한 청량은
계곡의 물속에 있지 않다.
불편함을 온전히 체험하는 순간,
그 자체로 찾아오는 깨달음 속에 있다.
소나기에게
네가 지나는 그 자리마다
지구의 숨소리가 새겨진다
뜨거운 아스팔트 증기를 모아
구름의 씨앗을 만들자
태양이 우리를 녹여도 그 잠시 녹아내린 몸으로
거울 같은 물웅덩이에 자신의 참모습을 비출 수 있다면 그게 인간의 유쾌한 저항이다
선풍기는 윙윙대고, 태양은 정점에 오르고, 소나기는 휩쓸고 간다. 나는 물웅덩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일그러진 형상 속에서 열기로 인해 더욱 선명해진 생의 윤곽을 발견한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도 계곡의 물은 시원하게 흐르지만, 내 안의 열기는 스스로의 온도를 조절한다.
그것은 뜨거움을 화력으로 전환하는
인간 존재의 변주.
우리는 모두 태양 앞에서 증발하는 물방울이지만, 그 순간의 반짝임이 영원을 가리킨다.
녹아내리되 반짝이며,
그리고
입가에 소금기를 머금은 미소를 띠며.
태양의 악절
아스팔트 은빛 녹아,
백색 경고의 작열
메마른 잎새 목메인 기도,
뜨거운 숨결 아래의 정적 -
소나기의 카운터
검은 꽃 터지니 콩알 충격,
차가운 은빛 실타래
거리엔 웃음 터지고
천둥북에 하늘 갈라져
합주
뜨거운 금과 차가운 은 교차하는 신비선
빗방울 속 태양 불꽃,
빛줄기 속 빗물 눈물
생명의 리듬으로 고동치네—
푸르르르 ~ ~ ~
생명이 숨 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