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지나쳤을 내면의 깊은 우물에 던져진 돌멩이 같은 존재였다.
무더위는 도시를 무쇠 솥 위에 올려놓은 듯했다. 아스팔트는 타는 듯 달아올랐고, 공기는 꿈틀거리는 열기로 가득했다. 에어컨의 속삭임이 유일한 구원이던 그때, 발걸음은 저절로 공원 깊은 곳으로 이끌렸다.
거기, 한 그루 늘푸른 소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그 넓은 가지 아래는, 마치 세상이 숨겨둔 비밀의 방 같았다.
그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체감 온도는 확 떨어졌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이 일어났다.
바깥 세상의 소음 – 경적 소리, 사람들의 수다, 공사장 굉음 – 이 갑자기 희미해졌다.
대신, 솔바람이 소근거리는 소리, 지저귀는 새 한 마리의 노랫소리, 그리고 내 안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고요한 파문이 귓전을 채웠다.
이 소나무 그늘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었다. 무심코 지나쳤을 내면의 깊은 우물에 던져진 돌멩이 같은 존재였다.
이 소나무는 천년의 풍상을 견뎌낸 현자 같았다.
거친 갈색 껍질은 수많은 계절의 상처와 기쁨을 새겨놓은 고대 두루마리 같았다.
가지 끝마다 뾰족하게 솟은 푸른 바늘잎들은 하늘을 향해 고집스럽게 자신의 존재를 선언하고 있었다.
‘보아라, 나는 여기 있다.
불볕 아래서도, 한파 속에서도, 나는 푸르다.’
그 고집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변치 않는 것,
견디는 것의 위대함을,
그저 서 있음으로써 가르쳐 주는 듯했다.
<소나무 그늘에서>
여름 햇살,
날카로운 칼날 되어
땅을 가르고, 혼을 달구네
그러나 이 푸른 천막 아래선
시간도 발을 멈춰 서 있네
소나무 바늘, 햇빛을 걸러
내 발등에 반짝이는 금가루
바람이 지나면 속삭이네
“네 안의 숲, 잊지 말아라”
그늘진 땅, 시원한 호수 되어
내 그림자를 삼키네,조용히
거기 비친 얼굴, 낯설지만
가장 진실한 내 모습이라네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도
이 평화, 영원하길 바라네
월하시정
시를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바라보니,
소나무의 모습이 더욱 장엄하게 느껴졌다.
이 나무는 단순히 그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전체로 한 편의 침묵의 시를 쓰고 있었다.
그 시를 읽는 순간, 나는 무심결에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있었다. ‘이 장면을 담아야…’ 하지만 뷰파인더 속 작은 화면은 거대한 소나무의 존재감과 그늘이 주는 심연 같은 고요함을 도저히 담아낼 수 없었다.
오히려 그 행동 자체가 이 공간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졌다.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기록보다 체험이, 공유보다 침묵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
등짝을 나무의 울퉁불퉁한 몸통에 기대었다.
나무의 체온, 아니 지구의 숨결 같은 것이 느껴졌다.
눈을 감으니, 햇빛이 솔잎 사이로 스며들어 만들어내는 붉은 빛의 망토가 눈꺼풀 안쪽에 펼쳐졌다.
그 빛 속에서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일상의 소란, 쫓기듯 달려온 시간들, 성취와 불안이 뒤섞인 마음의 파편들…
그 모든 것이 솔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줄기처럼, 투명해지고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이 그늘은 초라한 내 생각들을 비추는 거울이자, 동시에 그것들을 씻어내는 샘이었다.
여기서 바라본 바깥 세상은 마치 유리병 속에 갇힌 풍경 같았다. 뜨거운 햇살 아래 뛰어다니는 아이들, 벤치에 앉아 땀을 닦는 노인, 스마트폰에 파묻힌 젊은이…
모두가 각자의 여름을 견뎌내고 있었다. 소나무는
이 모든 것을,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변함없는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분주함과 덧없음이,
이 고목 앞에서는 한낱 덧없는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우리가 발버둥치는 것들 중에, 이 나무가
한 번이라도 눈썹을 찌푸릴 만한 것이 있을까?
그저 바람에 흔들리며 ‘살아 있음’ 그 자체를 증명하는 이 존재 앞에서, 나의 모든
‘중요한 고민’들은 갑자기 우스꽝스러워졌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노라니, 문득 옛 선인들이 이 소나무 그늘에서 무엇을 느꼈을지 궁금해졌다. 그들은 분명 더 깊은 사색의 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소나무 아래서>
오백 년 푸른 기상 솟았는데 (五百 年 靑氣 聳)
한 줄기 서늘함이 세상을 덮네 (一稜 淸蔭 蔽)
옛사람들 그늘 찾아 시 읊더니 (古人 尋蔭 吟)
요즘 사람은 서늘함만 찾네 (今人 只覓 冷)
월하시정
시조를 마음에 되뇌이며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서늘함’을 찾는 요즘 사람이란 바로 나 자신이 아니던가? 에어컨과 냉장고에 길들여진 현대인의 한계를 이 소나무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아마도 나무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그늘을 드리울 뿐일 것이다. 그 관대함이 오히려 부끄럽게 느껴졌다.
소나무 그늘은 철학의 장이자, 낭만의 공간이었다. 땅에 떨어진 솔방울 하나를 주워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단단하고 각진 모습이 고대인의 장신호 같았다.
이 작은 열매 속에는 거목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응축되어 있었다. 마치 내 안에도, 이 뜨거운 세상 속에서도 고요히 뿌리내리고 꿋꿋이 자라날 수 있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능성의 씨앗은 아마도 이 소나무 그늘 같은 내면의 고요함 속에서만 발아할 수 있을 것이다.
무더위는 여전했지만, 그늘 속의 나는 이상할 정도로 시원한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평화는 외부의 온도가 낮아져서가 아니라, 내부의 소음이 잠잠해졌기 때문이었다.
소나무는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수많은 말이 들려왔다. ‘천천히 가라’, ‘뿌리내려라’, ‘푸르게 서라’.
그 말들은 바람에 스치는 솔잎 소리보다도 더 분명했다.
바깥 세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소나무 그늘을 벗어나는 순간, 다시 찾아온 뜨거운 공기가 마치 반갑지 않은 불청객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늘 속에서 얻은 작은 평화, 자아를 비추어 본 명징함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소나무가 내 영혼의 한켠에 작은 씨앗을 심어준 것 같았다.
길을 걸으며 뒤돌아보았다. 늘푸른 소나무는 여전히 위엄 있게 서서, 그 넓은 팔을 벌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우리 각자 안에 존재하는 ‘영원한 푸름’과 ‘내면의 그늘’을 발견하라는 조용한 초대장이었다. .
다음에 또 무더위에 지칠 때면, 나는 이 공원 깊은 곳의 현자를 찾아가, 그 고요한 거울에 내 모습을 다시 비춰 보리라.
그리고 그 속에서,
변치 않는 나의 푸른 잎새를 발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