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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푸르고 구름 밖에는

하늘은 언제나 구름 너머에 있었지만, 우리는 땅에 매인 눈으로 그 존재를

by 월하시정


창밖으로 스치는 구름 한 점이 마치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이고 가는 듯하다. 흰 덩어리가 천천히 해를 가렸다가 스러지며, 그 자리에 푸른 하늘이 드러난다.

그 푸름은 너무 맑아 마음을 찌르는 듯하다. 이 하늘은 언제나 구름 너머에 있었지만, 우리는 땅에 매인 눈으로 그 존재를 잊고 살았다.

구름은 결코 하늘을 덮는 게 아니다. 하늘은 영원히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빛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청천(靑天)
萬丈紅塵迷客路 (만장홍진미객로)
만 길 붉은 티끌
길잃은 나그네 길을 가리니

片雲浮世鎖靑穹 (편운부세쇄청궁)
한 조각 구름
뜬 세상 푸른 하늘을 가두네

擡頭忽見眞顏色 (태두홀견진안색)
고개 들어 문득 참빛을 보니

始覺浮生一夢中 (시각부생일몽중)
비로소 알겠구나 뜬 인생이 한바탕 꿈임을
월하시정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구름 속을 걷는다. 명예라는 두터운 운무, 애욕이라는 무거운 적운, 공포라는 차가운 층운이 하늘을 가린다.


우리는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구름을 하늘로 착각한다. 가끔 바람이 세게 불어 구름이 갈라지면, 푸른 하늘이 찰나의 기적처럼 드러난다. 그 순간,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다.

하늘은 말이 없다.
다만 그 푸른 빛으로 모든 질문을 압도할 뿐이다.

공자가 "하늘은 말하지 않는다(天何言哉)"고 한 말이 떠오른다. 하늘은 구름이 가렸다 드러났다 해도 변하지 않는 진리다.

구름 위
발밑에 펼쳐진 흰 바다
나는 새가 되어 허공을 가른다

추락할까 두려워
고개 들었을 때

눈이 시리게
푸른 무한이 나를 삼켰다

구름은 내가 버린
수많은 이름들이 흩어져
떠다니는 무덤이었다
월하시정

철학자들은 하늘을 우주의 질서로, 시인들은 영원한 사랑으로, 종교인들은 절대자의 숨결로 바라본다. 하지만 하늘은 그 모든 해석을 초월해 있다.

구름이 사라진 자리에 드러난 푸른 공간은 '무(無)'의 경이로움을 깨닫게 한다.

노자(老子)가 '도(道)'를 '비어 있되 쓸모 없음이 없다(虛而不屈)'고 한 말이

여기서 살아 움직인다.

이 비어 있음이야말로 만물을 품는 자궁이다. 푸른 빛은 공허가 아닌, 가득 찬 가능성의 색이다. 하늘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동자 속에도 같은 푸름이 스민다.

우리 안의 하늘은 구름(욕망)에 잠기면 좁아지고, 맑아지면 우주와 맞닿는다.

공항 창가에 앉아 비행기가 구름층을 뚫는 순간을 본 적이 있다. 두터운 회색 담장이 갈라지자, 눈이 시릴 만큼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그 아래로 구름의 산맥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위'와 '아래'의 개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구름 위에선 모든 게 명료해진다. 지상의 복잡한 길들이 단순한 선으로, 다툼은 보이지 않는 티끌로 작아진다.


여기서 비로소 인간은 자신이 하늘을 향해 뻗은 존재임을 느낀다. 두 발은 땅에 닿았지만, 정신은 언제든 구름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을.

푸른 하늘을 만나는 법은 단순하다. 고개 들어 구름 너머를 응시하면 된다. 하지만 이 단순한 행동이 가장 어렵다.

현대인은 스마트폰 화면이라는 인공 구름에 갇혀 진짜 하늘을 잊는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우리는 모두 별의 먼지로 만들졌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 몸속 철분은 죽은 별의 잔해다.

즉, 우리는 하늘의 일부이면서도 하늘을 잊고 사는 모순된 존재다. 구름은 우리가 하늘의 일부임을 일깨우는 장치다. 그것이 가릴수록 우리는 그 너머를 갈망한다.

푸른 하늘은 결국 자유의 은유다. 하지만 이 자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허공이 아니다. 새들이 구름 사이를 가르며 날아다니듯, 인간 정신도 세속의 구름을 뚫고 상승할 때 진정한 빛을 만난다.

공자(孔子)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는 말도 이 푸른 깨달음을 향한 열망이다. 구름을 뚫는 순간, 죽음조차 하늘의 일부가 되어 의미를 잃는다.

어둠이 내린 밤에도 하늘은 존재한다. 별빛은 구름 너머 푸른 하늘이 보낸 편지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하늘은 별들을 불살라 자신을 증명한다.

동이 트기 전 새벽녘, 지평선에 스미는 청명(靑冥)의 빛은 구름이 가장 얇아지는 순간이다. 이때 하늘은 마치 땅을 향해 속삭인다.

"네 안에도 나와 같은 푸름이 있다"고. 인간이 영원을 갈망하는 이유다.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도, 그 푸른 정신은 구름을 뚫고 하늘에 닿을 것이라는 믿음.

지금 창밖을 보라.
구름이 걷힌 자리에 하늘이 있다. 그 푸른 빛은 단순한 색채가 아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본질의 색이다.

구름을 하늘로 착각하던 눈이,

진짜 하늘을 마주할 때 비로소 뜨인다.

고개 들면 그곳에 있다.
영원히 변치 않는,
그러나
매 순간 새로워지는 푸른 약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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