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먼지와 가스가 뭉쳐 별을 탄생시키듯..
6월의 하늘은 무겁게 축축한 숨을 내쉰다. 장맛비가 오기 직전의 공기는 물분자로 가득 차, 호흡할 때마다 폐가 아닌 아가미로 숨 쉬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6월의 하늘은 무겁게 축축한 숨을 내쉰다. 장맛비가 오기 직전의 공기는 물분자로 가득 차, 호흡할 때마다 폐가 아닌 아가미로 숨 쉬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다 첫 빗방울이 이마에 떨어질 때, 그 순간적이고 차가운 접촉은 온몸을 전율케 한다.
그 한 방울은 단순한 물의 구체가 아니다. 그것은 무심코 땅으로 내려앉은, 작열하는 별 하나요, 무한히 축소된 은하의 용기다.
우산을 펴려던 손길이 주춤한다. 콘크리트 위에 막 떨어진 빗방울을 응시한다.
투명한 구체 속에는 뒤집힌 하늘, 비뚤어진 고층건물, 흐릿하게 반사된 내 모습이 갇혀 있다.
마치 한계 없는 공간이 유리구슬 속에 압축된 듯하다.
그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득한 우주의 먼지와 가스가 뭉쳐 별을 탄생시키듯, 이 작은 구슬 안에도 미니어처의 생명이 용솟음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강이 흐르고, 시간의 모래알이 흘러내리고 있지 않을까?
빗방울 한 방울은 그 자체로 완결된 세계다.
그 안에서 태양은 반짝이는 섬광일 뿐이고, 비행기는 순간 스쳐 지나가는 유성이다.
雨滴觀 (우적관)
六月梅雨滴 (육월매우적)*
掌中藏宙宇 (장중장우주)*
剎那生復滅 (찰나생부멸)*
永劫寓須臾 (영겁우수유)*
(유월 장맛비 한 방울 /
손바닥에 우주를 감추네 /
찰나에 생겨나고 또 사라지니 /
영겁이 한순간에 깃들었구나)
월하시정
이 한시는 빗방울의 모순된 본질을 압축해 보고자했다.손바닥 위에 잠시 머무는 이 작은 구슬은 ‘우주(宙宇)’를 품은 존재다.
‘찰나(剎那)’의 생멸 속에서도 ‘영겁(永劫)’의 시간성이 응축되어 있지 아니한가.
유월의 장맛비는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근본적 역설을 관조하는 현장이 된다.
빗방울은 머물지 않는다.
다른 방울과 합쳐지거나,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증발해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
그 존재는 본질적으로 유월(流月)
– 흘러가는 달 – 그 자체다.
덧없다!
그러나 그 덧없음 속에 깃든 영원함이 있다. 지구의 물 순환은 수십억 년을 이어온 끊임없는 여정이다. 이 빗방울은 아마도 공룡 시대의 바다를 거쳐, 빙하의 결정이 되어 햇빛에 반짝였고, 고대의 연못에 잠깐 머물렀다가
오늘, 나의 이마를 적시기 위해 하늘에서 뛰어내린 것일지도 모른다.
한 방울의 생명은 찰나이지만,
그 물분자가 품은 기억과 여정은 영원에 가깝다.
이런 생각에 잠기면,
비가 내리는 거리를 걷는 일이 우주 여행처럼 느껴진다. 발밑의 물웅덩이는 작은 성운이다. 우산을 튕기는 빗방울들은 우주 공간을 가로지르는 소행성들이다.
나는 우주복(우산)을 입고,
미시적 우주들이 쉴 새 없이 탄생하고 소멸하는 장엄한 광경 속을 헤엄치는 존재가 된다.
지구라는 행성의 6월 장마철!
강수 현상 구역을 정찰 중인 탐사선’이라고 자신에게 속삭이면, 갑작스레 쏟아지는 소나기가 우스워지기 시작한다.
우주가 이토록 가깝다니!
빗방울 우주항법
투명한 껍질 깨지며 /
도시의 빛 한 줌 삼키고 /
찰나의 구체 속에 /
온 하늘이 접혀 들어간다 //
시간의 맥동 – /
별의 탄생처럼 부풀고 /
검은 구멍처럼 사라져 /
포장도로 바다에 /
우주의 파문을 남기네 //
나는 우산 쓴 외계인 /
축축한 우주 공간을 /
미시 세계의 중력에 맞서 /
홀로 항해한다 //
한 방울이 부서질 때마다 /
은하 하나가 /
증발한다.
월하시정
이 시는 빗방울을 ‘고도로 압축된 시간의 맥동’으로 바라보며, 그 속에 ‘온 하늘이 접혀 들어간’ 공간을 상상해본다.
빗방울의 부서짐은 ‘은하 하나가 증발’하는 우주적 사건과 동격이 된다.
나는 잠깐 ‘우산 쓴 외계인’으로, ‘미시 세계의 중력’(곧 빗방울의 물리적 현실)에 맞서는 존재가 된다. 여기에 유월의 습함과 우주적 상상력이 교차한다
유월의 빗방울은 철학자의 돌.
평범한 것을 경이로움으로, 일시적인 것을 영원함으로 변환시키는 마법을 지녔다.
우리가 스쳐 지나치는 수많은
‘한 방울’들 –
아침 이슬,
커피 잔의 증기,
눈물 한 방울,
웃음소리의 작은 메아리 –
모두가 각자의 우주를 품고 있지 않을까?
그 안에는 축소된 경험, 감정, 존재의 전체성이 응축되어 있다.
한 사람의 인생도 우주적으로 보면 빗방울만큼이나 덧없고, 동시에 빗방울만큼이나 완전하고 복잡한 우주다.
작은 것에 집중하는 것은,
무한을 향한 또 다른 형태의 여행이다.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친다.
잠시 머물렀던 물웅덩이도 곧 마를 것이다.
그 안에 반짝이던 뒤집힌 하늘 우주는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겼던 광경, 그 순간 깨달은 무한에 대한 떨림은 남는다.
유월의 비는 지나가지만,
그 한 방울이 선사한 우주적 통찰은 마음 한켠에 스민 물기처럼 남아, 평범한 일상에 숨은 경이를 상기시켜줄 것이다.
다음 빗방울이 이마에 닿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손바닥 안에 깃든 무한한 우주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
아마 그게,
축축한 6월이 주는 가장 시원한 선물일 테지.
결국 우리 모두는,
빗방울 같은 존재들로 가득 찬,
거대한 우주를 헤엄치는 작은 우주들인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