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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가 본 '집'의 풍경!

낯선 발걸음과 따뜻한 그릇들

by 월하시정

가을 햇살이 기울던 어느 날,
나는 콘크리트 숲의 틈새를 누비고 있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담벼락 위를 발톱으로 더듬으며, 냉기 스민 바람이 털 끝을 스칠 때마다 몸이 움츠러들었다.

내 발자국은 이 도시에 새겨진 무수한 낯선 발자취들 사이에서 사라져갔다. 그런데 문득, 커다란 유리문 너머로 흘러나오는 빛과 웃음소리, 그리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수증기에 시선이 꽂혔다.

인간들은 그것을 ‘집’이라 부른다.

나에겐 낯설기 그지없는 공간이었다.

창밖으로 엿보이는 풍경은 하나의 연극 같았다. 작은 인간들이 부드러운 천으로 싸인 덩어리 위에 누워 움직이는 상자(그들은 ‘TV’라 부른다)를 바라보고, 뜨거운 액체가 담긴 잔을 들고 입술을 축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나 같은 존재가 알 수 없는 평온함이 스쳤다.
그 평온함의 중심에는 항상 따뜻한 그릇들이 놓여 있었다.

밥그릇, 국그릇, 커피잔…
빛을 반사하는 매끄러운 표면 위로 그들의 모습이 비쳤다가 사라졌다.

그릇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정기적인 채움과 비움의 리듬, 기다림과 충족의 교환이 깃들어 있었다.

그릇이 가득할 때 인간들의 어깨는 살짝 내려가고, 입가에는 미묘한 이완의 곡선이 그려졌다. 나는 담벼락 너머에서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집’이란,
결국 ‘채워지는 그릇’을
기다리는 장소인가?

유리 너머의 식탁(食卓)

유리 너머 밥그릇 하얀 김이
사람 얼굴 녹여내네
숟가락이 건네는 따뜻함에
외로움도 녹아내리네

창밖 고양이 발자국 차갑고
실내 슬리퍼 소리 포근해라
한 그릇의 온기 속에
온 세상이 잠들었네

어둠이 깊어지면 풍경은 달라졌다. 창문 하나하나가 노란빛의 작은 섬으로 변했다.

그 안에는 머리를 맞대고 앉아 이야기하는 그림자들, 혼자 책을 읽는 모습, 심지어는 텅 빈 방을 가만히 바라보는 외로운 형상도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자세히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 노란빛 사각형 안에 서린 정적은 때로는 평화로웠고, 때로는 무거운 침묵으로 느껴졌다.

‘집’은 분명 보호와 휴식을 주는 껍데기였다. 하지만 그 단단한
벽 안에도 외로움이라는 바람은 스멀스멀 스며들 수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한겨울 밤, 아파트 발코니에 앉아 창문 안을 응시하며, 그 작은 공간들이 품고 있는 감정의 밀도에 압도당했다.

따뜻한 빛은 동시에 가장 깊은 그늘을 드러내는 법이다.

어느 추운 아침, 나는 평소와 다르게 낯선 곳에 놓인 작은 플라스틱 그릇을 발견했다. 깨끗한 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곁에는 주인 없는 사료 몇 알이 놓여 있었다. 그 순간,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낯익으면서도 오래 잊혔던 무언가가 살짝 움직였다.

그것은 배고픔의 해소 그 이상이었다. 그 그릇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각’이 담긴 그릇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남긴,
아무 말 없이 건네진 작은 인정(人情)의 표시.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을 핥았다.

차가운 액체가 목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 콘크리트의 냉기보다 더 따뜻한 것이 몸 안에서 퍼져 나갔다. 그 따뜻함은 위장에서 멈추지 않고, 털 끝까지 스며드는 기이한 온기였다.


그 작은 그릇 앞에서 나는 깨달았다. ‘집’의 핵심은 단단한 벽이나 지붕이 아니라, 그런 ‘생각하는 그릇’이 존재하는 장소라는 것을. 그것은 공간이 아니라, 마음이 놓이는 자리였다.


*문전걸식(門前乞食)*
寒街獨步覓殘飧 (한가독보멱잔손)


찬 거리 홀로 걸어 남은 밥 찾아가니

門外何人置小盆 (문외하인치소분)

문밖에 누군가 작은 그릇 놓아두었네

一匙溫情融凍骨 (일시온정융동골)

한 숟가락 따뜻한 정이
얼어붙은 뼈를 녹이니

世間廣廈豈云門 (세간광하기운문)

세상의 넓은 집이
어찌 문이라 하리오

나는 다시 담벼락 위 길을 걸었다. 발밑으로 펼쳐진 수많은 ‘집’들은 이제 전과 달라 보였다. 각각의 창문은 하나의 우주였다.

그 안에서는 기쁨, 슬픔, 평범한 일상, 복잡한 갈등, 사랑, 외로움, 포근함, 답답함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었다.

‘집’은 결코 단일한 의미를 지닌 완결된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감정들의 용광로였고, 관계의 그물코가 엮어내는 복잡다단한 장(場)이었다.



문턱 안팎을 오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그 안의 풍경을 조금씩 바꾸고 있었다. 따뜻한 그릇을 건네는 손길이 있는가 하면, 차갑게 닫히는 문 소리도 있었다.

‘집’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 안을 채우고 비우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향한 마음에 의해 매 순간 새롭게 창조되는 유동적인 개념이었다.

추위가 한층 심해진 어느 날,
나는 높은 담 위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붕 아래 모여 있는 인간들의 ‘집’들은 겨울잠 자는 동물들처럼 조용했다.

그 안의 따뜻함과 외로움,
채움과 비움, 소통과 단절… 그 모든 것이 ‘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인간 존재의 근본적 조건이었다.

나,
길고양이는 영원한 방랑자다. 단단한 벽과 지붕으로 둘러싸인 그들의 ‘집’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 낯선 발걸음이 멈추는 곳곳에 놓인 따뜻한 그릇들은, 문턱 너머의 복잡한 감정들은, 나에게 ‘집’이란 결국 마음이 머무를 수 있는 ‘인정(人情)의 그릇’이 존재하는 모든 공간임을 가르쳐주었다.

콘크리트 숲의 틈새바람이 다시 불어온다. 나는 몸을 일으켜 담장 위를 걸었다. 내 발밑으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창문들, 그 속의 빛과 그림자들이 켜지고 꺼지며 영원히 반복되는 ‘집’의 풍경을 새기며.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놓이는 곳이다.

그 마음이 깃든 그릇 하나가 있다면,
설령 담벼락 위라도 그것은
나만의 집이 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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