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의 첫 장은, 스스로 쓴 서문이 아니라 남이 써준 추천사로 시작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던져진 우리는,
자신의 출생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존재의 절대적인 시작점이면서도, 가장 망각된 순간이다.
출생증명서라는 한 장의 종이는, 그 거대한 사건을 냉정한 날짜와 장소, 이름으로 압축해 버린다. "OO년 O월 O일 O시 O분, OO도 OO시 OO병원." 이 뼈대 같은 정보 너머에는 어떤 광경이 펼쳐졌을까?
아마도 피로 물든 포근한 공포,
첫 숨의 날카로운 통증, 그리고 어머니의 지친 미소와 아버지의 두근거림이 교차했으리라.
그 순간은 우주의 신비 그 자체였을 터인데, 우리는 그저 타인의 증언과 한 장의 문서로
그 초대를 받아들인다.
우리 생의 첫 장은,
스스로 쓴 서문이 아니라 남이 써준 추천사로 시작된다.
출생,생일, 그리고 그 이후에는 ...
미지의 시작
*初生 (초생)*
混沌劈開光一道
혼돈이 갈라져 빛 한 줄기
啼聲初試破蒼昊
울음소리 처음 하늘 가르네
不知來處何所似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으나
已印塵寰第一爪
이미 세상에 첫 발자국 새겼도다
생일은 반복되는 출생일의 기념이다.
해마다 돌아오는 이 날은, 시간의 수레바퀴가 우리를 깔고 지나간 자리에 꽂는 깃발 같다. “축하해!”라는 말 속에는 “네가 존재해서 고마워”라는 의미도, “또 한 해를 버텼구나”라는 위로도, 그리고 “앞으로도 잘 버텨 보자”는 다짐도 스멀스멀 스며 있다.
케이크 위의 촛불 숫자는 점점 불길해진다. 열 살엔 열 개가 영광이었지만, 마흔에 마흔 개를 꽂으면 공포에 가깝다. 그 불을 끄기 위해 바람을 들이쉬는 순간, 우리는 과거 한 해의 모든 기쁨과 슬픔, 후회와 성취를, 허파 깊숙이 빨아들여 잿더미로 만드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그리고 소원을 빈다.
소원은 항상 미래를 향해 있다.
생일은 현재에 서서,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향해 내딛는 이상한 정거장이다. 친구들이 모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를 때면,
그 목소리 속에 스며있는 각자의 인생사가 중첩되어 묘한 화음을 이룬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누군가는 습관으로,
누군가는 케익이 먹고 싶어서.
순환의 의식
*생일카드 한 장 분량의 진실*
“오늘만큼은 특별하게”
인쇄된 글씨가 위트 있게 말한다.
특별함을 증명하려 발버둥치는 하루,
평범함의 무게만 더 짓눌러온다.
촛불 연기는 결국 천장 선풍기에 휩쓸리고,
소원은 입술에 맴돌다 녹아내린 크림이 된다.
내일 아침,
생일날 할인으로 산 커피 한 잔이
가장 현실적인 위로다.
그러나 이 모든 생의 잔치와 기록은,
결국 한 가지 날짜를 향해 수렴한다.
사망일.
출생일과 생일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혹은 수동적으로 기념하는 날이지만,
사망일은 오직 타인을 위한 추모의 날이 된다.
우리는 자신의 사망일을 목격할 수 없다.
그것은 생의 저편에 놓인, 보이지 않는 종착역이다. “OO년 O월 O일, 향년 OO세.” 출생증명서와 대비되는 이 간결한 기록은 한 인간의 모든 이야기를 종결해 버리는 무서운 힘을 가진다.
그 날짜 앞에서 모든 성취와 실패, 사랑과 증오, 기쁨과 고통은 평등해진다. 다만 그 날짜가 기록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신문 1면을 장식하고, 누군가는 가족의 애도 속에 조용히 스러지며, 누군가는 아예 기록되지 않기도 한다.
사망일은 생의 마지막이자, 유일하게 반복되지 않는 날이다. 그 날 이후로 생일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죽음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생의 부조리함에서 유머를 찾으려 애쓴다.
유언장에 “장례식 비용은 내 통장에 있으니 꼭 쓰시오. 다만 웃음 참느라 고생 마시길.”이라 쓰거나, 묘비명에 “여기 누워 있는 자는 평생 주차 문제로 고생했으니, 이제 편히 쉬게 해 주시오.”라고 새기는 이들도 있다.
죽음 그 자체는 무겁지만,
그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는 생의 위트가 스며든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생의 고집스러운 아름다움이다.
마침의 미학
이 세 개의 날짜는 우리 인생의 뼈대를 이룬다. 출생일은 우리 존재의 근본적이고 신비로운 시작점, 생일은 그 긴 여정 속에서 스스로를 확인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반복적 의식, 사망일은 모든 이야기의 필연적 종결이자 새로운 추억의 시작점이다.
출생일은 타인이 알려주고, 생일은 스스로와 타인이 함께 축하하며, 사망일은 타인이 기억한다. 우리는 자신의 출생과 사망을 직접 목격하지 못하는 존재의 아이러니 속에서, 생일이라는 반복 가능한 의식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확인한다.
어쩌면 인생이란 출생일이라는 시작점과 사망일이라는 종점 사이를, 생일이라는 작은 등대로 표시해 가며 걷는 긴 여정인지도 모르겠다. 각 생일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까지의 길은 어땠나?
앞으로의 길은 어떻게 갈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은 케익의 달콤함보다는,
촛불을 끈 후의 잠깐의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해마다 한 살 더 먹으며, 결국 그 어둠 자체와 더 친숙해져 가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웃음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그것이 생명이 죽음 앞에서 보이는 가장 아름다운 저항이자, 세 개의 날짜를 잇는 가느다란 빛이기 때문이다.
출생일, 생일, 사망일. 이 세 점을 잇는 선은 결국 우리 각자의 생애라는 고유한 그림을 완성한다.
그 그림의 가치는 케익 위의 촛불 개수나,
묘비에 새겨진 숫자가 아니라, 그 선을 따라 펼쳐진 수많은 순간들 – 웃음과 눈물, 사랑과 이별, 성공과 실패,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생의 온기와 위트 – 에 달려 있다.
우리는 태어나고,
매년 기념하고,
마침내 떠난다.
인간이 시간에게 상처 자국을 남기는 사이, 우리가 남기는 웃음소리가 시간의 벽을 가볍게 두드리는 한,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내 생애 마지막 SNS를 Update 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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