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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신화

불꽃과 그늘의 변주곡

by 월하시정

* 태양의 제국 *


태양이 지평선을 집어삼키는 순간, 여름은 제국의 깃발을 높이 든다. 뜨거운 광휘 아래 모든 것이 녹아내릴 듯하지만, 오히려 생명은 더욱 격렬하게 타오른다.



푸른 열기, 축축한 숨결, 메마른 대지 위로 스치는 바람—여름은 모순의 계절이다.

고통과 환락, 생명과 소멸, 광기와 평온이 한데 어우러진다.


한시로 그 뜨거운 정경을 담아본다.


"赤日當空照(적일당공조) /

붉은 해 허공에 비추니**

萬物皆沸騰(만물개비등) /

만물이 모두 끓어오르네**

蟬聲如烈火(선성여열화) /

매미 소리 불길 같아서**

心隨熱浪升(심수열랑승) /

마음도 열기에 따라 오르네"


현대시로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태양이 내리꽂히는 오후,

풀잎 하나가 타버릴 것 같은데,

그 아래서 개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제국을 건설한다.

열병 같은 계절,

우리는 모두 광기에 잠긴 시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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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정의 불꽃 : 뜨거운 감각의 시


여름은 감각을 폭발시키는 계절이다. 땀, 열기, 물빛, 소리—모든 것이 과장되어 느껴진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번지는 열기, 한낮의 정적을 가르는 매미의 비명, 저녁 노을에 물드는 수박의 붉은 속살. 여름의 서정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생생하다.


한시로 그 뜨거운 감각을 노래한다.


"炎天無處避(염천무처피) /

뜨거운 날씨 피할 곳 없어

唯臥綠陰中(유와록음중) /

오직 푸른 그늘에 누웠네

忽聞流水響(홀문류수향) /

문득 흐르는 물소리 들리니

心似得淸風(심사득청풍) /

마음이 시원한 바람을 얻네"


현대시로 풀어낸 감각:


"한낮의 뜨거운 공기,

내 코끝에 맺힌 땀방울이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나는 소금기가 낀 기억 속에서

파도를 헤엄친다.

아, 이 계절은

너무 뜨거워서

모든 것이 시(詩)로 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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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사의 폭풍 : 여름의 대서사시


여름은 거대한 서사다. 태풍이 지나가고, 천둥이 울리며, 하루아침에 강이 넘쳐난다. 모든 생명은 극한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 메뚜기는 뜨거운 들판을 가로지르고, 개구리는 마른 웅덩이에서 비를 기다린다. 여름은 신화 속의 영웅처럼, 파괴와 재생을 반복한다.


한시로 그 격동을 기록한다.


"暴雨傾盆下(폭우경분하) /

폭우가 쏟아져 내리니

江河一夜漲(강하일야창) /

강물이 하룻밤에 불어나네


蛙鳴爭破曉(와명쟁파효) /

개구리 소리 새벽을 깨우고

風暴寫傳奇(풍폭사전기) /

폭풍이 전설을 쓴다네"


현대시로 서사적인 여름을 그린다.


"하늘은 검은 잉크를 쏟아내고,

땅은 그것을 삼키지 못해

강이 되어 흐른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

메뚜기 떼의 비행,

모래언덕이 무너지는 소리—


이 모든 것이한 편의 서사시다.

태양이 다시 떠오를 때,

우리는 새로운 장(章)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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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니힐리즘의 한낮 : 불타는 허무


여름은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뜨거운 햇살 아래서 인간의 욕망도, 노력도 재가 되어 흩어진다. 한낮의 태양은 무情的(무정적)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불타는 순간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발견한다. 모든 것이 소진된 뒤에 남는 것은 오직 텅 빈 하늘뿐이다.


한시로 허무를 노래한다.


"烈日燒天地(열일소천지) /

작열하는 해가 천지를 태우니

萬象皆成灰(만상개성회) /

모든 모습이 재가 되네

唯有虛空在(유유허공재) /

오직 텅 빈 하늘만 남아

無喜亦無悲(무희역무비) /

기쁨도 슬픔도 없네"


현대시로 표현한 니힐리즘:


"한낮의 태양 아래,

내 그림자마저 녹아내린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뜨거운 대지 위에 서 있다.


이 순간,

모든 의미가 타버리고,

오직 광기만이 남는다.

나는 비로소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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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철학의 그늘 : 여름의 존재론


여름은 인간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이 열기를 견딜 수 있는가?" "생명은 왜 이토록 고통스러운 환경에서도 살아남는가?"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직시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열기 속에서만 깨닫는 진리가 있다.


한시로 철학을 담아본다.


"夏熱如爐火(하열로화) /

여름 더위는 용광로 같아서

煉盡人間慾(연진인간욕) /

인간의 욕망을 모두 녹이네

唯有清涼意(유유청량의) /

오직 시원한 마음만이

不隨炎氣滅(불수염기멸) /

뜨거운 기운에 꺼지지 않네"


현대시로 표현한 여름의 철학:


"나는 뜨거운 모래 위에 앉아

내 삶이 녹아내리는 것을 본다.

그 속에서도

어떤 핵(核)은 남아 있다.

태양이 모든 것을 태워도,

그 재 속에서

새로운 씨앗이 돋아난다.

이것이 생명인가?

아니면, 단지

광기의 또 다른 이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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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장 : 여름의 종말론


여름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폭풍우가 지나가고, 뜨거운 날씨가 가라앉으면, 우리는 어느덧 가을을 맞이한다. 그러나 여름이 남긴 것은 불타버린 흔적뿐만 아니라, 그 열기를 견딘 자만이 알 수 있는 깊은 통찰이다.


한시로 마무리한다.


"夏去秋風起(하거추풍기) /

여름이 가니 가을 바람 불어

餘熱在人心(여열재인심) /

남은 열기는 사람 마음에 있네

烈火煉真性(열화연진성) /

맹렬한 불이 진실된 성품을 단련하니

歲月不虛侵(세월불허침) /

세월이 헛되이 침범하지 못하네"


현대시로 끝을 맺는다.


"여름은 떠나간다.

그 뜨거운 손길이

내 어깨 위에서 미끄러져 내린다.

나는 이제 알 것 같다—

이 계절은

단지 날씨가 아니라,

영혼의 기후였다는 것을.

태양이 기울면,

나는 비로소

그 빛을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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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여름, 불의 신화


여름은 서정과 서사, 니힐리즘과 철학이 뒤엉킨 거대한 신화다. 그것은 우리를 태워 없애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게 하기도 한다.

뜨거운 한낮의 태양 아래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 열기가 식을 때,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얻게 된다.


*불타버린 자만이 아는 시(詩)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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