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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에서의 사색

산은 움직이지 않지만 모든 생명을 키우고,

by 월하시정

돌사다리 미끄럼길

막대잡고 올랐더니

흰구름이랑 어정어정거리는

성그런 풍경소리


동자 중이 문앞에 나와 일른 말,
큰스님 앞산에 잠들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하더이다."


산사(山寺)에 이르러 발걸음 멈추니, 돌사다리가 하늘을 향해 비스듬히 놓여 있다. 미끄러운 길을 막대기에 의지해 오르니,

흰 구름이 어정거리며 맞이한다.

문 앞에 선 동자가 고개를 젓는다.

"큰스님은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앞산을 바라본다. 어디쯤에서 큰스님은 잠들어 있을까.

산은 말이 없고, 바람만이 스쳐 간다.

山僧吟(산승음)
空山寂寂白雲深 공산적적백운심

獨倚枯筇聽澗音 독의고경청간음
老僧未歸春已暮 노승미귀춘이모
落花無語對禪心 낙화무어대선심


허한 산 고요하고 흰 구름 깊은데
홀로 지팡이 기대여 시냇물 소리 듣네
늙은 스님 돌아오지 않는데

봄은 이미 저물고

떨어진 꽃

말 없이 선심(禪心)을 대하네

월하시정

산속의 시간은 다르다.

하루가 한 세월처럼 길고,

때로는 한 순간이 영겁처럼 느껴진다.


수행자의 삶은 이 산속에서 고요와 혼돈 사이를 오간다. 큰스님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은 어쩌면 깨달음의 길이 끝이 없음을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저 앞산 어딘가에서

잠든 큰스님을 기다리는 동자와도 같다.

'돌아오지 않는 것들'
흰 구름이
산문(山門) 앞에
어정어정 서 있다

동자가 말한다
큰스님은
아직
저 산속에
잠들어 있다고

나는
막대기를 짚고
한 발 더 올라서 본다


어디에도
그는 없고
다만
바람만이
스산하게
내팽개친 시간을
흔들고 있을 뿐

수행(修行)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끝없는 기다림일지도 모른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앉아 있지만,

정작 깨달음은 앉아 있는 그 순간이 아니라,

그 순간을 지나고 난 뒤의 텅 빈 마음에 찾아온다.


큰스님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가 이미 이 산 전체가 되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가 되고, 바람이 되고, 흰 구름이 되어 어정거리는 저 풍경 속에 스며 들었을 것이다.

산은 늘 침묵으로 답한다.

수행자의 고민은 끝이 없지만, 산은 그저 고요히 그들을 품을 뿐이다.


어쩌면 진정한 깨달음이란,

이 침묵 속에서 자신이 산과 하나가 되는 순간일지 모른다.


동자가 전한 말—

"큰스님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話頭)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철학적 사유 : 무위(無爲)의 길


노자(老子)는 말했다.

"행하지 않음(無爲)이 곧 이루어짐이다." 큰스님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가 이미 '행하지 않음'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수행이란 애쓰는 것이 아니라,

애쓰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산은 움직이지 않지만 모든 생명을 키우고,

물은 멈추지 않지만 만물을 적신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원한다.

깨달음을 얻고 싶어 안달하고,

진리를 찾으려 발버둥친다.

그러나 진정한 깨달음은 애쓰지 않을 때 찾아온다.


마치 흰 구름이 어정거리듯,

마치 시냇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듯,

모든 것은 제자리에서 저절로 이루어진다.

**에필로그**


돌사다리를 오르며 나는 생각한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큰스님은 아직 저 산속에 계시다.


어쩌면 그는 이미 이 길을 다 걷고,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곳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한번 발걸음을 내딛는다.


흰 구름이 어깨에 스치고,

바람이 귓전에 속삭인다.

"멈추지 말라. 다만 가거라."
산은 여전히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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