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라면 이들을 두고 “순간의 화가”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동트기 직전의 거리는 고요함과 불안 사이를 흔드는 잠잠함으로 가득하다.
어둠이 걷히기 시작할 때쯤,
골목 어귀에서 세 남녀가 악기를 꺼낸다.
- 바이올린, 첼로, 플룻 -
그들의 손길이 닿는 순간 악기들은 잠에서 깨어나 숨죽인 공기를 가르기 시작한다.
아침 연주는 매일 같은 자리에서
시작되지만, 결코 같은 소리로 끝나지 않는다.
철학자라면 이들을 두고
“순간의 화가”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하루의 시작을 음표로
수놓으며, 시간의 강물에 발을 담그고 우뚝 서 있다.
시간과 음악의 교차로
첫 번째 아침,
그들의 연주는 겨울 호수의 얼음처럼 맑고 차가웠다.
첼로의 저음이 땅을 스치며 어둠의 잔재를 쓸어내리자,
플룻이 이삭을 튕기는 바람에 실려온 새벽빛이 되어 응답했다.
바이올린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북극성처럼 차분하게 길을 알려주었다.
이날의 연주는 철학자나 시인의 강물을 닮아 흘러갔다.
“흐르는 강물은 시간의 변주곡”이 되어, 철학적 선언이라는 음악으로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엔 갑자기 봄비가 내렸다.
우산을 든 행인들이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는 사이, 트리오의 음악은 오히려 화사해졌다.
첼로의 현에서 봄비의 축제가 터져 나오고,
플룻 소리가 빗방울과 함께 콩닥거렸다.
바이올린은 축축한 공기를 가르며 지나간 겨울에 대한 애도를 끝내는 듯했다.
이날 그들은 악보를 사용하지 않았다.
마치 날씨가 그들의 스승이 되어 즉흥의 교향곡을 지휘하는 것처럼 보였다.
변주의 법칙
아침이 현악기의 목덜미를 잡고 흔들 때, 그들은 알갱이마다 다른 광물을 품은 채 도시의 경계석에 서 있다
첼로의 숨결이 포장도로 아래 잠든 어제의 발자국을 건져 올리면 플룻은 빌딩 사이로 스며든 새벽빛을 16분 음표로 썰어 낸다
바이올린 활이 그리는 호흡의 곡선
차량 신호등의 적색과 결탁하여
공중에 주판알처럼 맴도는 계이름!
누군가의 커피 잔 속에서 원무를 춘다
그들이 매일 악기를 다시 손질하는 것은 쇠붙이도 하루에 한 번은 녹슬어야 한다는 음향의 역설을 증명하기 위함일 게다
길거리 트리오의 연주법 제1조:
"아침이 올 때마다 네게 남은 현은
어제의 그것과 결코 같지 않다"
밤새 쌓인 달의 침전물을 털어내며 그들은 새로 도래할 빛을 위한 미완성 서곡의 화음으로 스스로를 조율한다
일시정지된 교차로
지하철 역 광장에서 세 개의 음향이 잠시
팔짱을 낀 채 우산 꼭지처럼 서 있다
발걸음의 메트로놈이 흐트러진 오전 8시
첼로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공기 분자들이 플룻 구멍을 타고 유령열차를 따라가고 바이올린의 뜨거운 눈물이 빵조각을 씹는 회사원의 목덜미를 적신다
신호등이 노래하는 사이 그들은 한 사람의 호흡으로 합주한다
길 건너 초등학생의 목소리
빈 깡통 차지하는 노인의 손짓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은
시계 태엽 소리
모두 다 카운트베이스가 되어
십오 분 동안 이 도시는 한 개의 음향생태계로 순환한다
음표들이 옷깃을 스치며 지나갈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심장박동을 반주에 맞추고 있음을 깨닫는다
적색등이 다시 녹색으로 변하는 순간,
트리오의 몸짓은 공중에서 증발하고 흩어진 화음의 파편들이 오후의 미세먼지와 결합하여
빌딩 유리창에 새겨지는 날
그 도시의 청력은 한 층 예민해져 있다
소리 너머의 세계
어느 가을 아침,
바이올린 연주자가 현을 다루는
방식을 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
그녀의 활이 현을 스치는 각도가
1도 달라질 때마다 음파가 공기 중에 그리는 기하학이 완전히 변했다.
이는 마치 인간의 의식이 현실을
인지하는 방식과 닮았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세계는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트리오의 연주는 매일 새로운 각도의 프리즘을 통해 빛을 분산시키는 광학 실험 같았다.
어느 날은 연주가 갑자기 중단되었다.
첼로의 현이 끊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당황하지 않고
15분 간의 침묵 연주를 시작했다.
지나가던 학생이 휴지조각을 날리자, 플룻 연주자가 그것을 악보대로 삼아 공중에 음표를 그렸다.
이 예측불가의 순간들이야말로
길거리 연주의 진정한 정수다.
연습실 속 완벽한 연주보다 도시의 숨소리를 머금은 불완전함이 더 생생한 예술이 되는 역설.
부서진 계이름
아침이 현악기에 부딪혀 깨져
유리 조각처럼 흩어지는 날
나는 그 조각들을 주워
시간의 모자이크를 만든다
첼로의 상처에서 피어나는 철학의 새싹이 플룻 구멍을 타고 미답의 옥타브로 흘러간다
바이올린 활촉에 묻은 전날 밤의 눈물 결정체가 도시의 심장을 때릴 때 음표들은 중력에서 벗어나 우주의 포르티시모로 날아오른다
변주곡으로서의 존재
그들을 본 지 100일째 되는 날,
트리오가 사라졌다.
자리에 남은 것은 악기 상자 자국과 바람에 흩날리는 악보 조각뿐이었다. 그러나 이 조각의 짐조차 하나의 음악적 여운으로 다가왔다.
우리 삶이란 본질적으로 이런 것이 아닐까?
잠시 모여 화음을 이루다 흩어지는 음표들의 무리.
길거리 트리오는 매일 아침 그 사실을 일깨워주는 현현하는 철학 교과서였다.
아침이 현악기의 목덜미를 잡고 흔들 때 그들은 알갱이마다 다른 광물을 품은 채 도시의 경계석에 서 있다
첼로의 숨결이 포장도로 아래 잠든 어제의 발자국을 건져 올리면 플룻은 빌딩 사이로 스며든 새벽빛을 16분 음표로 썰어 낸다
바이올린 활이 그리는 호흡의 곡선은 차량 신호등의 적색과 결탁하여 공중에 주판알처럼 맴도는 계이름.
누군가의 커피 잔 속에서 원무를 춘다
그들이 매일 악기를 다시손질하는 것은 쇠붙이도 하루에 한 번은 녹슬어야 한다는 음향의 역설을 증명하기 위함일 게다
길거리 트리오의 연주법 제1조:
* 아침이 올 때마다 네게 남은 현은
어제의 그것과 결코 같지 않다 *
밤새 쌓인 달의 침전물을 털어내며 그들은 새로 도래할 빛을 위한 미완성 서곡의 화음으로 스스로를 조율한다
그들이 남긴 최후의 선물은 ‘완결되지 않음’이었다.
완성된 교향곡보다 영원한 변주곡을 선택한 이들의 연주는,우리로 하여금 일상의 매 순간이
독립적인 악장임을 깨닫게 한다.
아침 햇살 각도가 변할 때마다
새로 쓰이는 악보 위를, 우리 모두는 자신의 발걸음으로 연주하는 음악가다.
끝나지 않는 카덴차 속에서.
모두의 Cadenza를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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