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때를 보여주자, 뭘로?
한주의 업무가 쏟아져 내리는 정신없는 월요일 오후,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현장직원을 뽑았는데 아르바이트 생이 왔다는 현장담당자 이메일이 발단이었다. 그것을 보고 리더의 질책이 쏟아진다. 팀원 모두 자기를 향한 비난의 화살일 까봐 그 말의 본의를 조심스럽게 따라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친구를 채용한 거야? 도대체 채용담당자는 이런 부분도 안 거르고 어떻게 면접을 본 거야?” 채용담당자의 머릿속이 하얗다.
“그리고 이런 친구가 들어오더라도 최소한 신입교육 때 그런 부분을 교육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교육담당자도 같이 머리가 하얘진다.
리더의 화살은 방향을 바꾸면서 날아간다.
"000 신입 누가 면접 본거야? 교육은 누가 한 거고?"
000? 면접을 본 것도 나고 신입교육을 한 것도 나다. 리더의 입에서 날아온 화살이 빠르게 방향을 전환하며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빠르게 기억회로를 돌려본다. 생글생글 웃으며 면접을 잘 보았던 인력이었다. 경력은 없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판에 박힌 대답을 진땀을 흘려가며 했던 인원이라 기억에 남는다. 진땀 흘리는 면접자는 귀하다 그래서 가산점이 붙는다. 요즘같이 부족함을 모르고 성장해 절실한 것이 없는 시대에 진땀이란 이 회사에 들어오고 싶다는 최소한의 몸부림이고 자기 어필이다. 면접진행관의 이성이 아닌 감성에 어필하는 효과적인 장치인 것이다. 그랬던 지원자였는데 1~2주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신입교육 때의 기억을 소환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 면접 자 신입교육 때는 기억이 없다. 20명 정도가 같이 받는 하루 짜리 교육이었는데 기억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적극적으로 교육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눈에 띌 만큼 적극적이지도 눈에 띌 만큼 태도가 나쁘지도 않았던 것이다. 채용면접과 신입교육을 해서 현장으로 인원을 보내는 일을 주로 하다 보면 이런 클레임이 한 번씩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빈도가 늘었다.
‘요즘 제대로 된 신입이 없다’
현장에서의 클레임이 자주 들어오다 보면 채용과 교육 담당자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부끄럽지만 면피하고자 하는 저런 소리다. 들어오는 이력서가 적고 그 적은 이력서 중에 쓸 만한 것이 없어 힘겹게 뽑았다. 경력 있고 훌륭한 인재는 다 어디를 갔는지? 그나마 쓸 만한 사람이라고 뽑았는데 이런 사단이 발생한 것이다. 채용에 들이는 비용은 예전보다 늘었는데 채용의 아웃풋은 현저히 떨어진 것 같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왜 제대로 된 신입이 별로 없을까? 우리 회사만의 문제 인가? 사회전체가 그런 걸까?
직장을 대하는 인식이 바뀐 이유가 가장 크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하나의 직장에 평생 다니면서 먹고 산다는 의미가 없어진 시대이다. 그래서 한 명의 개인이 길어진 수명만큼 여러 개의 직업을 가져야 하고 그 숫자보다 더 많은 직장을 옮겨 다닌다. 이직이 곧 능력이 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력을 업데이트하면서 채용시장에 팔린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애사심이라는 고리타분한 감정에 호소하는 시대가 끝났다. 회사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면 회사를 쉽게 떠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생각을 감추지 않는 것도 지금 시대이다.
채용 전의 모습과 다르게 채용 이후 태도가 돌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심리도 있다.
‘이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나를 낮췄다는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채용 이후에는 구성원을 살짝 무시하려는 자기 보호 본능’ 감추었던 자존심이 다시 발현되는 것이다. 보상심리가 더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더 단단한 껍질을 쌓고 사람을 대한다. 이런 심리는 신입을 맞이하는 조직의 첫 모습에 의해서 더 배가 되기도 한다. 첫 출근하는데 기존 직원들이 환영하는 모습이 없고 하나의 일하는 기계가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풍길 때, 이 신입은 첫날부터 직원이 아닌 아르바이트의 자세를 풍기게 된다.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를 할 수도 있다. 입사와 동시에 취준생에서 퇴준생으로 바뀌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직원을 뽑았는데 아르바이트 정신으로 무장한(?) 신입사원이 들어왔을 때 우리의 역할을 무엇일까? 바로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아르바이트로 생각하는 그곳에 무엇보다 일로 치열하게 승부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줘야 한다. 프로의 일과 그 일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것으로 이곳이 단순히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곳이 아님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신입에 쓰인 아르바이트라는 라벨링을 빨리 던져버려야 한다. 사람은 라벨링이라는 것에 무척이나 좌우된다. 한 사람에게 쓰이는 라벨링이 그 사람을 정의하고 그 사람의 행동을 이끈다. 그 라벨링을 하는 것이 기존 직원들이다. 그리고 라벨링의 방향은 리더가 만든다. 신입이 들어왔을 때 쉽게 그에 대하여 라벨링 하는 문화를 버려야 한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도 라벨링 하지 않기 위해 사람 대 사람으로 동등한 인격으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다.
(“JY, 결재 바랍니다. “ 삼성, 오늘부터 임원도 수평 호칭 https://n.news.naver.com/article/009/0005081989)
임원이라고, 창업자의 후손이라고 해도 예외 없이 서로 수평이 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되는 시대가 되었다. 경직된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한 의도라고 하는데 그동안 삼성이 진행해 왔던 행보(의전축소, 직급통합, 인재확보..)를 보면 1등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생존의 차원으로 느껴진다. 나이나 직급보다는 성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고 그런 사람들을 모으겠다는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다. 계급장을 떼고 싸운다는 말이 있다. 이제 회사는 그런 곳이 되었다. 삼성도 계급장을 떼고 커뮤니케이션하는 회사가 되었다. 일로서 승부를 보는 모습을 그런 조직문화를 통해 계급장을 떼어 나가고 있다.
신입 혹은 후배라는 계급장을 떼고 하나의 일하는 인격으로 인정하고 대해야 한다. 아르바이트라고 인식하게 하는 것은 아마도 일 적인 부분보다는 그의 태도나 모습일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부분은 자연스럽게 일에 몰두하면서 서로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일로 평가를 해야 한다. 일로 교육해야 한다. 돌아보면 신입들을 향한 비난의 본질은 말투, 태도, 순화되지 않은 날것의 자기 모습인 경우가 많다. 이런 것이 일보다 더 중요하게 평가 내려지는 조직문화 때문이다. 신입의 태도나 개인적인 성향도 조직에 맞추어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즉, 신입에게 기대할 것은 일로서의 효능감을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복장이나 헤어스타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대한 평가에 앞서 일로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역할을 존중하고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에게 제대로 된 일을 주고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이다.
'직원을 뽑았는데 아르바이트가 왔다고요?'
'일이나 시켜보고 말씀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