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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형

by 윤병우

내가 어렸을 때 겨울이면 황매산 골짜기에는 눈이 많이 오고 날씨도 매우 추웠다. 밤새 눈이 내리는 날이면 대나무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축 늘어지고 '땅 땅' 소리를 내며 부러지기도 했다.

눈이 내린 아침이면 마당 빗자루로 뒷간과 동네 큰새미까지 눈을 쓸어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드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이런 일은 주로 큰형님 몫으로 가끔 나도 동참하는데, 처음에는 재미있다가 금세 지치고 싫증이 났다.

등굣길에는 양쪽 끝을 묶은 긴 새끼줄 안에 들어가 동네 아이들과 칙칙폭폭 기차놀이를 하면서 논두렁 길로 내달리곤 했는데, 맨 앞의 기관사가 논두렁 아래로 끌고 내려가면 뒤에 선 아이들도 줄줄이 끌려 내려가서 눈 속에 처박히는데 쌓인 눈이 허리까지 차기도 했다.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눈밭을 걷다가 눈 위에 벌러덩 누워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노라면 황홀한 기분과 함께 온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았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일어나면 눈 위에 큰 대자로 자신의 자국이 만들어지는데 이 또한 동심을 살찌우는 재미있는 놀이였다.

아이들의 놀이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풍성하다. 겨울이면 연날리기, 썰매타기, 못꽂기, 자치기 등 놀이가 수없이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많이 부러워했던 사람 중에 용이라는 동네 형이 있었다. 그는 두세 살 위의 선배로 감탄할 정도로 재주가 많았다.

용이 형은 커다란 썰매에 굵은 철근으로 레일을 만들어 얼음 위에서 웬만한 턱이나 이물질이 있어도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잘 넘어갔다. 내 썰매가 티코 차라면 용이 형이 만든 썰매는 벤즈 격으로, 그 형의 두 동생도 나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요즘 사람들의 차 욕심처럼 그 당시 어린아이들에게는 썰매 욕심이 많았다.

썰매의 핵심은 레일인데 시골에서는 굵은 철사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용이 형은 어디서 구했는지 철근으로 썰매의 레일을 만들었다. 요즘은 철근 토막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그 당시 시골에서 철근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웠다.

건축용 철근은 오돌토돌해서 레일로 부적합한데 별다른 장비가 없었던 시절에 그렇게 매끈하게 연마하는 것은 불가사이한 일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학교 창문 레일을 뽑아서 썰매를 만들기도 했다. 초등학교 창문을 열다 보면 간간이 레일이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애들이 썰매 레일을 만들려고 몰래 뽑아간 것이었다. 하지만 창문 레일로 만든 썰매도 용이 형의 철근 레일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는 산토끼나 꿩을 잡는데도 선수였다.

겨울에 밭에 가면 보리가 파릇파릇한데 이는 산토끼의 주요 먹잇감이었다. 잘 익은 찔레 열매 가지를 꺾고 그중 몇 알에 청산가리를 넣은 후 산토끼가 자주 나타나는 보리밭에 꽂아두면 밤사이 먹이를 찾은 산토끼가 이것을 먹고 죽는다.

꿩은 주로 고구마를 캐낸 빈 밭에 나타난다. 일자 드라이버의 끝을 얇게 갈아서 노란 콩에 구멍을 파고 청산가리를 넣어서 꿩이 자주 내려앉는 밭에 두면 이것을 먹고 꿩이 죽는다.

토끼는 약을 먹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지만 꿩은 대개 100미터 정도 날아가다가 죽기에 이 산 저 산을 헤매며 찾아야 한다.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던 용이 형이 산토끼나 꿩 몇 마리를 양손에 들고 의기양양하게 걸어오는 것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싸이나 또는 비상이라 불리던 하얀 덩어리의 청산가리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는 주로 광산에서 금이나 은을 추출할 때 용매로 사용하는데 이웃 마을에 있었던 은광에서 구했으리라 추측된다.

어쩌다가 나도 청산가리를 조금 얻어서 시도해 보았는데 나에게 당할 정도로 어리석은 산짐승은 한 마리도 없었다. 같이 낚시를 가서도 고기를 낚는 사람과 못 낚는 사람이 있듯이 산토끼나 꿩도 주인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청산가리는 매우 위험한 약품으로 산 너머 동네에서 사망사고 소문이 들리기도 했다. 겨울이면 애들이 생고구마나 무를 베어 먹다가 잠바 호주머니에 넣어두곤 했는데 호주머니에 떨어져 있던 청산가리 가루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다.

언젠가는 용이 형 집에 매를 길렀던 적이 있다. 털갈이도 하지 않은 새끼 매를 잡아서 철망으로 새장을 만들어 자신의 초가집 청마루 앞에 올려놓고 길렀다. 매일 개구리를 잡아서 먹이로 주면 날름날름 잘 받아먹더니 어느새 그놈이 어미가 되었다. 대개 야생의 새를 잡아서 집에서 기르면 며칠 만에 죽고 마는데 초등학생이었던 용이 형은 마치 전문가처럼 매의 특성을 잘 알고 어미가 될 때까지 기른 것이다.

어느 날 형이 새장 문을 열고 그 매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려는데 날아가지 않고 집안을 맴돌았다. 먹이에 적응된 것인지 자신을 보살펴 준 주인과 정이 들었던 것인지 모르지만 참 신기한 일이었다.

여름에 가뭄이 계속되어 시냇물의 양이 줄어들면 흐르는 물을 에워서 물고기를 잡곤 했다. 물고기가 많은 곳에 돌과 흙으로 물길을 돌리고 고무신으로 물을 퍼내면 바위틈에 숨어 있던 물고기가 나온다. 돌멩이나 모래 때문에 바닥으로 스며드는 물이 많아 완전히 퍼낼 수는 없을 때는 시냇가에 있는 독풀을 돌멩이로 찧어서 물에 풀면 숨어 있던 물고기가 둥둥 떠 나오기도 한다. 용이 형은 이런 방법으로 고기를 잡는데도 선수였다.

우리 동네는 황매산 자락 최상류이기에 물고기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 주로 피리, 중테기, 텡가리, 미꾸라지, 가재 등 작은 물고기가 주종이었다.

진양호 댐이 완공된 1969년 이전에는 간혹 뱀장어나 민물새우 등도 있었는데 댐으로 인하여 생태통로가 단절되면서 이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예전에 석정 근처 시냇가에는 다람쥐가 엄청 많았다. 적으로부터 몸을 숨길 돌담이 많았고, 도토리나무로 먹이가 풍부했으며, 수백 년 수령의 속 빈 느티나무가 있어서 다람쥐에게는 지상낙원과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시냇가의 매끈한 바위에 앙증스럽게 앉아 있는 다람쥐에게 살금살금 접근하면 큰 꼬리를 반동 삼아 순식간에 돌담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언젠가 용이형 집에는 빠르게 쳇바퀴를 돌리고 있는 다람쥐가 있었다. 신출귀몰한 다람쥐를 어떻게 생포했는지도 신기했지만 다람쥐 집과 쳇바퀴로 만든 물레도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매사에 맥가이버처럼 만능이었던 용이 형은 어린 시절 내 동심 속의 우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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