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병우 Nov 21. 2022

나의 살던 고향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황매산 자락 복치동이다. 황매산은 봄이면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철쭉, 가을이면 넓은 평원을 설원처럼 하얗게 뒤덮는 억새로 유명하다.

나는 고향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고, 현재는 대학 전자공학과 교수로 근무 중이다.

부모님은 오래전에 작고하셨지만 시골에는 형수님이 살고 있고 형제들이 공동으로 지은 별장 집이 있으니 연고가 그대로 있는 셈이다. 부모님 제사 때나 명절은 물론이고 평소에도 도시의 지인들과 나의 고향집을 찾아 함께 즐기곤 한다.

 

"우리가 죽으면 이 동네에 누가 들어와서 살겠나!" 내가 어릴 때 아버지 말씀이다.

'앞으로 달리다가 뒤로 돌면 꼴찌가 1등이 된다.'라고 했던가. 첩첩산중 산골짜기로 하늘 아래 첫 동네가 지금은 많은 이들이 살고 싶어 하는 최고의 장소가 되었으니 격세지감이다.  


지난 토요일 부친의 기일이었다. 팬데믹으로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서울, 제주도 등 전국 각지에 사는 팔 남매가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여서 부친의 제사를 정성으로 모셨다. 이런 날이 아니면 일흔이 넘은 형제자매들이 한 자리에 만나기가 쉽지 않으리라.  


제사를 마치고 일요일 아침. 고향에 사는 외사촌 동생이 부역을 나간다기에 자초지종을 물어보고 따라나섰다. 부산에서 유명 회사를 경영하다가 산 좋고 물 좋은 우리 마을에 회사 연수원을 지어서 20여 년 전부터 터를 잡은 손 회장님께서 사비로 1천 그루의 영산홍을 구매해서 마을 앞 도로 중앙 화단에 심기로 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돕기로 한 것이다.

고향 사랑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이기에 삽을 들고 집사람과 고향 출신인 제수씨를 동행하여 동네 앞으로 나갔더니 많은 사람들이 연장을 들고 속속 모여들었다.


"화단 가장자리에서 30센티, 나무끼리 간격 40센티 정도로 심으면 됩니다." 연수원 조경관리 직원의 말이다.

마을 이장님은 깃발을 들고 차량 통행 관리를 했다. 내 친구의 형님이자 평소 땀을 많이 흘리는 전임 이장님도 일을 거들었다.

외갓집에 다니러 온 젊은이, 홀어머니를 찾아뵙기 위해 찾아온 후배, 덕동댁, 냄편댁, 고향을 지키는 몇 안 되는 젊은이. 너도 나도 팔을 걷고 열심히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허태숙 가회 면장이 음료수를 사들고 왔다.

"아이고, 직접 이곳까지 몸소 찾아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오늘 다른 일정이 많아 오래 있을 수는 없고 인사만 드리고 가겠습니다." 고향 발전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면장님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한마음 한 뜻으로

"야, 이거는 천 삽 떠고 허리 펴기다." 구덩이 파는 사람과 호미로 나무를 심는 동네 아주머니들 모두 상대의 속도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서두르다 보니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나무를 심는 분들이 너무 빨리 하시면 안 됩니다. 구덩이를 파는 사람들의 공간을 확보해 줘야 작업이 빠릅니다." 구덩이를 파는 조와 나무를 심는 조가 분업으로 일을 했다.

"마치 새마을 운동을 하는 것 같네요." 도시에서 자란 내 아내의  70년대 새마을운동 시절 10대 소년었던 나의 옛 추억 올랐다.

"손 회장님, 마을 중심을 통과하는 신작로는 새마을 운동 당시 우리 동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함께 나와 괭이와 삽으로 손수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 그때는 중장비 없이도 몇 달에 걸쳐 괭이로  땅을 파서 신작로를 만들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내었던 추억들이 나의 삶에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여담으로 내 아내는 35년 전에 차남인 나를 만난 후 둘만의 신혼도 없이 부모님을 모시면서 부산으로 유학 온 조카 둘이 대학에 갈 때까지 뒷바라지를 했으며, 올해 초 33년의 교직에서 명퇴를 한 나에게는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식수 후 단체 사진

모두들 즐거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일을 하다 보니 1천 그루의 나무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심었다.

요즘 시골 동네의 인심은 내가 어렸던 6,70년대와는 많이 바뀌었다. 동네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뭉쳐 땀을 뻘뻘 흘리며 일을 하는 것을 보니 나의 마음에 뿌듯함과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늘 이런 마음으로 영원히 더불어 사는 따뜻한 마을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도 가져 보았다.


노동 후 식사는 꿀맛

"일을 끝내고 모산재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합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마을 이장님의 공지사항이다.

나는 집안 행사 때문에 참석할 수가 없어 잠시 들러서 인사만 하기로 했다.


"제가 퀴즈를 하나 내겠습니다. 나무는 무엇을 먹고 살까요?" 마을 이장님의 소개로 인사를 하게 된 내가 주를 모으기 위해서 한 말이다.

"물~",  "햇빛", "영양소" 여기저기서 나름대로의 답을 외쳤다.

"네, 모두 맞습니다만 저는 '사람의 정성'을 먹고 산다고 생각합니다."  

'엥~~.'

"문제를 하나만 더 내겠습니다. 꽃 중에는 어떤 꽃이 가장 예쁠까요?"

"장미", "호박꽃", "사람꽃",... 제각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저 생각에는 자신이 스스로 심고 가꾼 꽃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심은 소중한 나무가 잘 자라도록 우리 모두 잘 보살피자는 말 덧붙였다. 나의 말은 나무만을 두고 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주민 모두가 이처럼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아름답게 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시는 손진기 회장님께도 마을 주민 모두의 마음을 모아 큰 감사의 박수를 보내 드렸다.

아름다운 세상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아름다운 향기는 소리 없이 퍼져나가서 많은 이들을 행복하 하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도 작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