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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르 왕자 Oct 23. 2022

쓸모를 묻는 당신에게

묻고 답하는 삶을 완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학생이 수학을 공부하겠다고 하면 "수학 공부해서 어디다 쓸려고 하느냐?"라고 반문하면서 수학을 잘하는 것을 보니 머리가 좋고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것 같은데 "법대나 의대를 가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이 조언이 정말 조언이 되려면 두 가지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첫째는 수학 공부가 정말 쓸모없는 공부인지를 증명해야 하고 둘째는 법학이나 의학이 수학보다 더 쓸모가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잘 생각해보면 병원에 가는 일과 법원에 가는 일은 정말 어쩌다 가끔 있는 일이고 또한 법을 잘 모르더라도  변호사를 고용하면 되고 의학지식이 없더라도 집 주위에 잘하는 병원을 가면 된다. 반면 우리의 일상을 잘 살펴보면 모닝커피, 지하철, 신문, SNS, 비밀번호, 전화번호, 이메일, 노트북, 앱다운, 신용카드, **페이 등 모든 것들이 숫자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우리가 살고 있고 이러한 생활이 가능하게 된 모든 배경에는 과학기술이 있으며 과학기술이 수학이라는 언어로 기술되어 있음을 볼 때 최소한 수학이 정말 쓸모가 없는 학문이라는 사실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이 자각될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 법학이나 의학이 수학보다 더 쓸모가 있음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앞에서 살짝 언급하였듯이 사회를 떠나 특수한 상황에 놓인 개인을 놓고 보면 법이나 의학은 무용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사막에서 길을 잃은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본인의 GPS이며 본인의 GPS는 수학의 수식을 통해서 얻어지므로 어찌 보면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의 근원적인 쓸모를 제공한 것은 수학이다. 그를 구할 수 있는 많은 의학지식을 가진 이들이 그를 찾을 수 없다면 그러한 의학지식은 그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리라. 또한  개인이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의식주가 가능하게 하는 내 통장의 돈은 사실 숫자이며 이러한 숫자들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금융의 기본적인 거래들이 모두 전기적 송신과 수신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며 이러한 거래를 안전하게 하기 위한 프로그램과 코드, 암 호등의 기술적 원천은 수학적 지식이다. 즉 몸이 아픈 사람과 소송을 하는 당사자에게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의사를 있게 해 준 의학과 변호사를 있기 해 준 법학이 쓸모가 있었겠지만 이러한 상황에서조차 차분히 자신이 왜 아프게 된 것이지 생각하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병의 원인을 살펴보는 것이 본인의 심리적 안정감을 회복하고 병을 이겨내는데 더 필요한 일이므로 그동안에 학교에서 받은 교육이 여러모로 더 쓸모가 있을 수도 있다.  


"당신이 낭가 파르트 설산을 오르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라고 물은 질문에 김영민 교수가 쓴 책에 나오는 등반가 라인홀트 매스너는 이렇게 답한다. "그렇게 묻는 당신의 인생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물질에 대한 소유와 명예에 대한 욕망에 닿아있지 않은 목표는 의미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는 훨씬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수학사에도 전해지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유클리드의 제자가 "어렵기만 한 기하학을 배워서 어디에 쓰나요?"라고 묻자 유클리드는 "그에게는 동전 몇 푼을 주어서 보내라. 자기가 배운 것으로부터 대가가 있어야 하니." 라고 답했다고 한다.  유클리드는 제자의 질문에 대하여 학문의 즐거움이란 답을 내놓은 반면 이보다 더 심오한 매스너의 반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사유가 뒤따라야 한다. 또한 이러한 사유를 할 수 있으려면 이러한 질문을 받고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한 생각의 힘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부터 스스로 질문하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 반복되어 조금씩 큰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찾는 훈련의 과정을 거쳐서야 생긴다. 우리가 해야 할 공부는 바로 그러한 준비과정이어야 하며 질문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고 다시 그 토대 위에서 정확한 답변을 내놓는 일이야말로 정말 쓸모 있는 교육의 중심 주제이지 않을까? 우리가 마주치게 될 예기치 못한 질문에 대하여 제대로 답변할 수 있는 사유의 힘이 예상문제를 만들어서 그 문제들만 공부하면 되는 의사고시나 변호사시험 같은 공부에서 나온다고 믿을 이가 과연 누가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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