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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르 왕자 May 14. 2023

정답을 맞히는 연습이 무슨 도움이 될까?

그 커다란 오해의 시작- 수학은 정답을 맞히는 학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수학문제를 대하면서 맞고 틀렸는지에 대하여 어느정도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풀어온 문제집을 풀어놓으면 엄마나 선생님이 빨간 색연필로 채점해서 점수를 알려주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수학학습의 기억...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수학이란 정답이 정해진 문제를 모양과 형태를 바꿔가며 끝없이 생산해내는 기능적 과목처럼 인식된다.  또한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모든 선생님들은 정답이 있는 문제만을 학생들에게 묻고 정답을 맞히는 학생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교육을 지속해 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런 정답이 있는 문제들을 풀면서 정답을 맞히게 되었을 때의 작지만 지속적인 '쾌락'과 '보상'을 즐긴 나머지 수학이란 학문에 대한 오해를 하게 된다. 그러나 정답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어떤 이에게는 너무나 답답하고 인내심을 폭발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닐까? 사실 세상 대부분의 문제에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데도 교실과 가정에서 언제나 정답을 맞히도록 요구받는 상황이 아이들에게 가해질 압박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 같다. 


전술한 바와 달리 또 어떤 사람들은 정답이 없는 문제에 매달리며 서로 논쟁만 하고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집단들의 투쟁에 치를 떨며 공허한 말장난만 늘어놓는 것에 염증을 느낀다. 질서 정연한 별들의 움직임, 정확한 목표지점을 향해 움직이는 미사일, 프로그램한 대로 만들어지는 3D  프린팅을 보다 보면 정합적인 과학이 보여주는 합리적 세계와 대비되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의 세계를 보면서 나와 같은 사람은 깊은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수학에서는 적절한 조건하에 주어진 문제는 시간이 걸릴지언정 답이 존재하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되지만 현실에서는 스마트 폰 어플상으로는 30분 이내로 도착해야 할 쇼핑몰에 가는 데 갑작스러운 사고가 나서 한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수학교육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 되묻게 된다. 


칼 세이건은 그의 위대한 저작 '코스모스'에서 관찰과, 실험에 기반한 이오니아 세계의 과학적 전통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부활하기까지  꽤 오랫동안 단절된 데는 사모스 섬에서 활동했던 피타고라스와 그 제자들처럼 '조화-이상적 세계'에 집착한 나머지 오류에 대한 가능성을 품지 못한 학자들과 노예의 육체적 노동에 의존하면서 정신적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으면서도 정신적 사고만을 중시하고 육체노동을 멸시했던 플라톤과 아리스토 텔레스와 같은 이들의 잘못된 인식이 있었다고 비판한다. 즉 육체적 노동인 실험과 관찰, 자료의 분석에 의해 실증적으로 확립되는 과학적 법칙이 아니라  관념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원칙들에 의해 세계가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정신의 육체에 대한 우위에 기반한 사유활동만 지나치게 강조하게 되어 과학활동을 오히려 저해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피타고라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모든 수는 자연수와 유리수로만 이루어진다고 강하게 믿은 나머지 무리수의 존재를 숨기려 헤파이토스를 살해한 사건은 모든 것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하는 오늘날의 과학적 태도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과학이란 울타리 안에 있는 수학에서의 학문활동도 대개는 답을 알지 못하는 문제들을 풀어내는 과정과 그 과정에 대한 보고,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 대한 회고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답을 알지 못하는 문제를 풀어내는 것과  답을 알고 있는 문제들을 푸는 것 사이의 관계는 도대체 무엇인가? 즉 수학교육이 가져다는 주는 이득이 수학이란 학문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물어본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사실은 수학교육과 수학은 내용을 공유하는 것 이상 외에 서로 관계가 없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뜻인지 아리송해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실상 정답을 가르치는 수학교육- 즉 교과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교과활동-이 의도하는 것은 학생들이 정답을 찾게 되는 알고리즘을 배우게 하는 데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규칙과 순서를 지키면서 문제의 정답을 찾는 훈련을 반복시킴으로써 다른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도 이와 같이 알고리즘적 사고를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정답을 모르는 문제의 경우에는 어떤 규칙이나 순서마저도 연구자가 찾아야 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트레이닝을 필요로 하게 된다. 즉 정답이 있는 문제에 대한 교육을 아무리 철저히 받는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세계, 그리고 정답이 없는 문제와 씨름해야 하는 개인의 고민을 해결해 줄 어떤 경험치도 얻을 수 없다.     


잘 설계된 문제들을 퍼즐처럼 잘 풀어서 자신이 수학에 재능이 있는 줄 알고 수학을 전공하고자 온 많은 학생들은 2학년이 지날 때쯤에는 무엇인가를 재빨리 이해해서 빠르게 답을 찾는 일들이 더 이상 수학과에서 필요한 재능이 아님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결국 고교 수학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들이 수학과에서 성공하리라고 보장하는 것은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좋은 시스템--부모의 재력, 좋은 학군, 좋은 학원가--안에서 잘 자란 화초와 같은 인재들보다는 광야에서 부족한 것들을 스스로 찾아서 스스로를 성장시켜 온 인재들이 수학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수학역사에서 필즈 메달을 받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걸어온 그들의 인생의 자취를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정답이 없는 문제와 씨름하는 경험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졸업하게 된다. 과거에 비해 취업에 필요한 영어점수 올리기, 자격증 취득과 같은 일들에 밀려 대학 4학년에게 졸업논문을 요구하는 전통도 대부분의 대학에서 사라졌다. 그러므로 지금 하고 있는 교육은 수학을 소재로 한 알고리즘 교육일 뿐 '수학교육'은 절대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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