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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르 왕자 Apr 06. 2023

융합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들

   우린 양서류에 관심이 있는가?

우리와 친숙한 동물들 중에 개구리와 도롱뇽이란 동물들이 있다. 물론 두꺼비나 맹꽁이란 동물도 있지만 옛날만큼 보기 어려워진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은 양서류라고 불리는 녀석들이다. 양서류란 무엇인가?  네이버 백과사전에는 '어릴 때는 아가미로 물속에 살고, 성장하면 폐와 피부로 호흡을 하며 육상에서 살기 때문에 양서류라고 불린다'라고 되어 있다. 오늘날 지구의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이들 양서류의 개체수가 급감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판소리 '별주부전'에 토끼가 바닷속에 들어가서도 문제가 없어 보이니.. 사실은 토끼도 양서류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물에서도 살고 뭍에서도 사니 이게 엄청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뭍에 너무 천적인 많다 보니 번식과 생존을 위해 그나마 천적의 개수가 적고 보다 안전한 물에다가 알을 놓는 방식을 취해 어린 개체가 물속에서 성장하도록 한 전략을 취한 점에서는 이들의 삶의 고달픈 여정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양서류가 어디 크게 주목받은 적이 있었던가? 염상섭의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에서 나오는 것처럼 나약하고 힘없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오늘날 21세기 한국에서 융합이라는 키워드가 크게 유행하면서 교육에서 이른바 융합인재 육성은  너 나 할 것 없는 캐치프레이즈가 되어서 모든 대학의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교육목표가 되었다.  바야흐로 인간사회에서 양서류 찾기가 화제의 키워드가 된 것이다. 이런 격세지감이라니! 


융합이란 두 가지 이상의 학문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인류사회가 처한 문제를 다각도에서 접근하는 데서 나오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키워드인데 이는 단지 여러 가지 분야의 지식을 조금씩 얕게 공부한다고 생기는 기대효과는 결단코 아니다.  기대치가 높은  '융합'은 사실 각각의 분야에서 성공한 전문가가 기꺼이 타 분야에 대한 지식을 흡수하는 과정을 수행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것이 반드시 성공을 가져온다는 보장도 없지만 배움의 단계에서, 혹은 학부과정에서  타 전공과정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다면 결코 이러한 시도조차 하지 않을 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필요조건을 보장하기 위해서 너무나 세분화된 전공의 테두리에 갇혀 있는 학생들이 보다 더 자유롭게 타 전공 수업을 듣도록 보장하는 학부의 칸막이 폐지는 자연스럽게 생각해 볼 아이디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학과단위로 유지되어 온 학교시스템의 칸막이 폐지는 넘어야 할 여러 장벽이 존재하는 학내 정치의 분야가 된다.  단지 좋은 의도와 예상되는 좋은 결과가 구성원들의 동의를 보장하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낙관적인 태도인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파충류나 조류처럼 하나의 분야에서 성공하는 인재도 잘 길러내지 못하는 시스템에서 갑자기 양서류를 길러내겠다는 주장을 한 들 씨알이 먹힐 리가 만무하고 파충류나 조류, 혹은 어류로 갈라져 살고 있는 독자적 생태계에서 갑자기 양서류가 출현할 환경이  조성되려면 파충류나 조류 혹은 어류가 양서류를 잡아먹지 않겠다는 각서가 필요하다.  이러한 각서가 100% 지켜진다 하더라도  어떤 환경적 요인의 변화가 양서류의 출현을 유도해야 할 것인데 이는 배후에 있는 산업에서 이러한 인재에 대한 수요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또한 학교에서도 이러한 환경조성에 동조하는 연구그룹을 묶어서 어린 양서류가 생존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조치가 행해져야 하는 여러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대개의 융합학문의 운명이 낙관적이지 않은 것은 현실이다. 사실 인공지능 분야는 컴퓨터 과학에서  새롭게 출연한 융합학문이었지만 그 생존의 역사는 녹녹지 않으며 초창기의 많은 연구자들이 결국 학계에서 자리 잡는 과정에서 보다 논문이 잘 생산될 수 있는 분야로 전공을 바꾸고 변신하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기존의 분야에서 심화된 지식을 추구하는 저널의 방향성에 비추어 설익은 새로운 융합학문의 결과들을 실어줄 권위 있는 학술지는 현실에서는 찾기 어렵다.  전문가 집단이 존재하더라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는 학문생태계의 경쟁에서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다. 인공지능은 사실 컴퓨터의 획기적 발전에 힘입은 것인데 이는 산업적 측면에서 빅테크 기업이 출현하면서 대규모의 자본을 쏟아부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시간적인 단축에 의한 결과임을 또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결과에만 너무 집착하여 모든 것의 융복합이 잘 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과학 분야 내에서 혹은 인문사회 분야 내에서 뿐 만 아니라 두 영역을 오갈 수 있는 '양서류'의 출현은 우리 삶을 풍족하게 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류의 문명사에서 분명 축복이 될 일이 분명하다. 그러나 양서류가 생존하기 위한 조건들은 누군가 의도했다기보다는 여러 진화의 경우처럼 매우 여러 가지 우연이 동반되어 일어난 것임을 주지해야 한다. 의도적으로 융합인재를 키우기 위한 조건을 만들어야 할 경우 우리는 자연보다 위대한 설계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과거에도 르네상스를 열었던 위대한 예술가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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