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마르 왕자 Mar 14. 2023

새내기들에게 건네는 인사말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3년 내내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어깨를 짓누르던 입시라는 부담을 벗고 대학교에 입학한 여러분들은 무엇이 가장 즐거울까요. 7시에 일어나 교복을 입고 8시까지 학교에 등교하던 아침의 소라스러운 풍경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고 학원과 학원사이 편의점에서 먹던 삼각김밥과 라면도 당분간은 먹지 않아도 됩니다. 주말 에 이불속에서 벼걔와  레슬링을 하면서 늦잠을 자는 여유도 이제는 부릴 수 있습니다. 집에서 하루종일 넷*릭스를 보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OTT드라마 몰아보기를 할 수도 있겠네요.  많은 제약들이 사라지고 개인에게 허락된 자유로운 선택의 시간들이 이제 여러분에게 주어졌습니다. 싱그러운 캠퍼스의 벚꽃들을 보면서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나누는 친구들도 곧 만들겠지요.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일광욕을 하며 나른한 오후에 잠을 청하는 여유도 부릴 수 있고 학교 축제 때 광란의 밤을 보낼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친구들도 있겠네요. 또 여자 친구 혹은 남자 친구와 손을 꼭 잡고 캠퍼스를 거니는 상상을 하는 친구들의 설렘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선택이란 단어를 저는 다르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선택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유한함을 상기시켜 주는 단어입니다. 물건을 살 경우에 여러분은 어떤 상품을 선택하고 많은 경우에 시간이 지나도 그 선택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행위에 대한 선택은 아쉽게도 뒤집을 수 없습니다. 특히 곧 한 사람의 사회인이 되기 위한 마지막 기간이 남은 대학생으로서 여러분이 내리는 수많은 선택들이 여러분의 가까운 장래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치므로 각 선택이 가지는 무게감은 더욱 무겁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들어야 하는 수업을 듣지 않기로 선택한 경우, 그 선택으로 인해 그날의 수업은 영원히 다시 돌아올 수 없으며 'A'라는 과목대신에 'B'라는 과목을 선택한 경우, 그 선택으로 인해 'A'라는 수업을 다시 들으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그때 다시 듣는 'A'란 수업을 같이 들게 되는 친구들은 또 달라지겠지요. 그러므로 한 번 지나간 순간과 선택은 결코 뒤집을 수 없습니다. 너무 철학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선택을 하지 않기를 당부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타인과 경쟁하고 평가받으면서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만 이제 이곳에서는 타인보다 조금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경쟁은 무의미합니다. 대학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상대평가도 존재하지만 절대 평가도 존재합니다.  또한 이제 배워야 하는 것들은 얕고 다양한 지식들이 아니라 여러분이 선택한 전공분야의 넓고도 깊은 지식들입니다.  고등학교에서는 국가에서 마련한 교육체계에 따라 정해진 과목들과 표준적으로 선택된 내용들만을 학습하였고 이를 잘 배웠는지 안 배웠는지 평가하였지만 이제 대학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대학마다 천차만별이며 같은 과목이더라도 교수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제 정형화된 수업은 없습니다. 물론 비정형화된 수업들-즉 보다 토론적이며 협동적인 수업들-보다는 내용을 배우고 시험을 치는 강의자 중심의 수업도 물론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교수와 학생의 상호작용은 수업시간에 즉흥적으로 일어나며 이러한 상호작용이 없는 강의는 졸음만 쏟아질 뿐입니다.  교수자가 상호작용을 이끌어내지 않는다면 학생인 여러분이 교수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계속되는 질문과 교수의 답변을 통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며 질문을 잘하는 법까지 덤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  


수영으로 비유하자면 수영장에서 나와서 이제 바다에서 수영할 때가 된 것입니다. 정해진 규격의 수영장에서 빨리 기록을 앞당기면서 1등으로 골인하는 게 중요했다면 이제 바다에서의 헤엄치기는 전혀 다른 성질의 활동이자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비바람이 치고 폭풍이 오는 바다에서조차 수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합니다. 사실 바다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맨손으로 하는 수영은 최소한의 자신의 생명을 지탱하는 수단이고 무엇보다 바다라는 환경(외부적 요인)을 이해하고 스스로(내부적 요인)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들입니다. 또한 혼자서 바다에서 고독하게 버티는 것보다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에서 오는 즐거운 경험을 통해 이 넓은 바다의 경이로움에 도전하는 것을 꿈꾸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가깝기만 해서 일본에 가는 걸까?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