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관한 생각 2

결혼의 사회적 의미

by 오마르 왕자

지난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힘든 것은 87년 체제 이후 전체주의적이고 파시즘적 형태의 정치적 억압에서 벗어나 집단이 아닌 개개인의 가치에 주목하는 사회를 지향하면서 그동안 개인을 옥죄고 있던 다양한 형태의 굴레를 발견하고 이를 부정하는 데서 비롯된 중심 가치관( dominated values)의 붕괴로부터 오는 공동화현상(hollowing out) 때문이다. 해방전후 사회의 지배체제였던 유교적 관습법을 거부하고, 625 전쟁에서 비롯된 분단이 가져온 전시사회의 병영식 문화를 거부하고, 가부장제 사회의 남성중심주의를 거부하고,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암묵적 공동체주의를 거부하면서 개개인의 선택에 기준을 제공하던 여러 가지 가치관들은 지배력을 잃었다. 이런 이유로 현재 개인은 그 자신의 선택을 온전히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자유의 저주에 놓여 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일원이었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이러한-비록 그는 정치적, 역사적 맥락에서 사용했지만- 판단의 어려움에 놓인 개인들이 자신의 주체적 결정을 포기하고 어떤 압도적 권위(현재 한국사회에서는 금전적 기준)에 선택을 맡겨 버리는 현상을 날카롭게 지적하였지만 중심가치관의 부재로 인한 다양한 가치관의 충돌로 인해 선택을 주저하는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도 오늘날 우리의 삶의 어려움을 더 잘 포착하는 키워드다. 보편적으로 지적하듯 오늘날 개인은 더욱더 많은 선택의 짐을 지고 있다. 선택은 언뜻 쉬워 보이지만 되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신중해지지 않을 수 없고 불확실성이 점점 더 커지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자신이 선택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판단할 길이 없는 개인은 선택하기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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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맥락에서도 쉬운 선택지는 있게 마련인데, 즉 선택하는 사람들이 가진 기준치를 관찰해 보고 그러한 기준치에 현저히 미달하는 정량적 기준을 획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선택을 포기할 수 있다. 방금의 문장을 결혼에 적용하면 왜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는지 기계적 알고리즘을 하나 만들어낼 수 있다. 즉 결혼을 하는 젊은이들과 혹은 결혼을 원하는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정량적) 기준, 즉 정규직 일자리와 7천만 원 이상의 연봉, 아파트 전세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개인 혹은 부모의 경제력과 같은 정량적 기준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정량적 기준치를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는 젊은이들은 어렵지 않게 결혼을 포기할 수 있다.


이는 물질적 가치관에 기초한 삼포세대의 혼인감소를 설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제력을 가지고도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혹은 하지 않고 있는 젊은이들의 선택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들은 어떤 기준에 근거해서 스스로의 삶의 궤적을 혼인이란 운명의 문을 지나치기로 한 것일까? 골드미스라고 불리는 현재는 결혼적령기가 지나 불임의 상태에 접어든 70년대에 출생한 많은 여성들은 상당한 비중의 여성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의 삶을 살고 있는데 이들은 직업적 커리어를 추구하여 금녀의 벽을 깨며 사회의 각 분야에서 남자들이 독차지하던 자리에 올라가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녀들이 결혼을 하던 때만 해도 '여필종부' 나 사도 바울의 에페소서에 나오는 말씀처럼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라'처럼 여성의 주체적 판단과 결정권을 제약하는 통념이 지배하던 시기였기에 이런 지배적 통념에 저항하는 개인의 의지는 결혼에 의한 속박된 삶을 부정하는 형태로 드러났다.


혼인-임신-양육의 사이클이 가진 사회유지의 필요조건으로 인해 우리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최대한 개인이 혼인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사회학적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에 와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회학적 재설계는 사실 혼인만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 우리가 느끼고 있는 정치적 문제에 대한 원인 역시 많은 사회학자들은 87년 이후의 형식적 민주주의 체제가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권위주의적, 집단주의적, 관료적 정치체제로 지목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느끼고 있는 저출산의 문제에 대한 원인 역시 87년 이후에 아직 확립하지 못한 가사노동, 육아, 돌봄, 교육에 관한 가치의 재평가를 통해 사회적 이익에 기여하는 housekeeper, care provider, spouse로서의 역할에 대한 남성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며 남성들이 이러한 영역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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