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을 다시 돌아보면 인문대, 자연대, 예술대는 입학의 경쟁률 저하로 인한 입학처와 기획처의 압박으로 인해 내부적인 진통을 겪으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구조조정을 위한 회의를 거듭했고 그 중심에서 난 자연대 부학장으로서 학장님의 지시에 의해 이해관계가 다른 학과들을 데리고 거의 2주에 한 번꼴로 회의를 거듭했지만 결국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하는 데는 실패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학장님은 자연대학의 여러 학과들이 본부와 개별적인 접촉을 하지 않고 창구를 단일화하여 학장님을 중심으로 내부적인 개혁안을 가지고 본부와 이야기를 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계셨지만 물리과와 생물학과의 이탈로 인해 이러한 계획은 좌절되었고 결국 학장님의 임기에 물리학과는 2024년 공과대학으로의 편입을 본부로부터 승인받았다. 또한 2023년에는 기획처의 주관으로 전략기획위원회에 소속되어 2주에 한 번 꼴로 여러 단과대들의 교수님들과 함께 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정부가 주관하는 글로컬 대학에 도전하기 위해 필요한 10쪽 자리 제안서를 위해 의견을 제시하는 노력을 하며 다가올 연구년만을 기다리며 간신히 버텼었다.
2023년에 접어들 무렵 나는 사실 번아웃(burn-out)이 온 상태였다. 저출산으로 인해 불어닥친 2022년 1차 쓰나미에 많은 대학들이 정원감축을 꺼내들 즈음 교직원과 교원의 신규임용이 멈추고 교비가 삭감되는 긴축이라는 현상을 체감하면서 교원의 소속감과 명예는 꺾인 데다 학생들의 취업률 지표 또한 좋지 않아 교무처와 기획처로부터 내려오는 경고성 공문들로 인해 연구는 뒷전이고 입학, 충원, 취업등의 지표를 올리기 위한 각종 회의와 실행과제들로 교수의 삶에 적잖은 회의를 느껴 와이프에게 계속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다는 말을 반복해서 일삼았었다. 설상가상으로 고등학교에 진학한 첫째가 인스타그램과 틱톡에 빠져 한 달이 멀다 하고 여자애와 사귀고 헤어지는 일들을 반복하면서 학교생활을 소흘이 하다 보니 아내의 신경도 극도로 날카로워져서 집에 들어가는 것이 정신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불러왔었다.
그리고 2024년 겨울에 드디어 연구년을 맞이하면서 그간에 쌓였던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날려버리는 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연구재단 연구비를 받지 못한 탓에 해외에 나가려는 계획이 연초부터 무산되었고 올해처럼 국내에서만 머문 해는 교수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처음이었던 탓에 자괴감도 느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해외에서 누구누구와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제 변화를 도모하기보다는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나이에 접어들기도 했거니와 그간의 학문적 몸부림과 번민 속에서 새로운 일들을 벌리지 않고 하던 일들을 마무리하자는 마음으로 연구년을 마치 신부님들이 보내는 안식년처럼 맞이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규칙적으로 무슨 일을 하지 말자는 마음가짐을 가지기는 했으나 수년간 하던 일들을 매듭짓기 위해 생각하던 문제들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어서 고등과학원 책상에 앉아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던 차에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어 수년간 해결하던 문제를 해결하기는 하였으나 나 자신의 희열과 뿌듯함이 타인의 차가운 비평과 모욕에 희생당하면서 연말에는 연구에 대한 회의가 찾아왔었다. 좁은 이 세계에서 협로를 지키며 누군가에게 너무나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지나가지 못하게 하는 수문장을 만난 느낌이 딱 내가 느낀 심정이었다. 권위 있는 저널에서 보내온 referee report속에는 야박하다 못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타박하는 어감이 묻어있었고 어둠 속에 숨어있는, 단지 실루엣을 통해 짐작할 뿐인 누군가로 인해 북미권 저널에 논문을 보내기 힘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까짓 논문 한 편 생산 안 하면 어떠하랴. 지방대 모 학과 교수가 논문 한 편으로 찌질하게 침대 속에서 이리저리 뒹굴거리며 번민을 하는 모습을 누가 걱정이나 할까? 그러나 직업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자신이 가진 직업으로 인해 세상에 염증을 느끼기도 하고 삶의 희열과 보람을 느끼기도 하는 운명에 처해있음을 잘 알고 있다. 소설가 김훈 선생이 이야기했듯 '밥벌이의 지겨움'운 이와 같이 외부의 압력에 무기력한 직업인이 돼있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꾸깃꾸깃 책상 서랍에 처박아둔 사직서를 찾게끔 할 정도의 힘이 있다. 지겨움은 사실 속박으로부터 오는 고통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에. 그러나 별다른 재주가 없이 글이나 읽고 쓸 줄 아는 간서치들 중에 하나인지라 결국 연구년이 끝나 고등과학원의 짐들을 정리하고 다시 원래의 직장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다짐한다. 그래 6년만 또 버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