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정한 기준들을 너무 믿지 말자.
여기 자발적으로 oo 대학 ooo학과에 들어온 사람 있으면 손 들어 보세요. 아니 보다 적나라하게 본인이 수능만점자라도 여기 들어왔을 사람 손 들어 보세요. 있나요? 그렇군요. 아무도 없네요. 사실 당연해 보이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이 사실로부터 풀어나가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우리는 우리 삶을 얼마나 스스로 선택하면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 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전공할 지 어느 대학을 진학해야 하는 지를 수능점수로 결정해야 하는게 얼마나 타당한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수능 몇 점은 어딜 가야 한다고 아무도 강요한 이가 없음에도 우리는 자발적으로 입시학원들이 만들어낸 가이드라인을 마치 따라야 할 법으로 알고 있는 걸까요?
여러분은 대학이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숙제는 없고 늘 족보에서 토씨 한 자 틀리지 않는 문제들로 이루어진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쉬운 강의만 들어서 좋은 학점을 받은 후 받는 졸업장의 무게는 과연 몇 kg일까요? 4년이란 시간 동안 이런 식으로 구성된 여러분의 삶이 보여주는 '화장발'은 과연 얼마나 오래갈까요? 화장발에 속은 누군가가 당신을 쫓아내는 데는 과연 몇 분이 걸릴까요? 조리하기 쉬운 편의점 음식만 계속 먹는다면, 혹은 외부에서 파는 음식만을 사 먹는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식이섬유부족과 나트륨 및 당의 과잉 섭치로 여러분은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의 만성적 질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도 육체와 마찬가지로 누군가 이미 먹기 좋게 만들어놓은 지식들만 소비하고 누군가가 알려준 것을 고민 없이 받아들이면 만성적인 근력부족에 시달리게 됩니다. 즉 처음에는 누군가의 말에 자신이 아는 몇 마디를 보탤 수 있지만 그 이후 스스로의 생각을 이야기해보라는 요구에는 지적 결핍에서 오는 생각의 근육이 없기 때문에 입 한번 벙긋하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억지로 말을 해봐야 헛소리만 지껄이기 마련입니다.
우리 몸에 근육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조금만 운동을 해도 피곤해지며 피곤한 몸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짜증이 납니다. 짜증, 분노, 화 이런 것들은 사실 배가 고프거나 힘이 들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정신의 척추기립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과연 스스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런 정신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당연히 반복적인, 재미없는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며 우리의 머리를 통해 1시간 혹은 2시간 넘게 계속 지식을 처리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또한 편식을 너무 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부족해져 빈혈이나 피부병 등 면역력이 약해지는 증상에서 비롯되는 질환에 시달리듯 너무 한쪽에만 편중된 지식만 받아들일 경우 우리는 지적 영양 결핍증에 걸려 계절의 변화에도 무감하며 타인의 말을 이해하고 느끼는 감성적 능력이 결여된 사무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과거 1990년대 초반 10%였던 사회에서 이제 1%에서 2% 사이를 기록할 정도의 저성장 사회가 되었으며 이는 인구가 늘어나지 않아 재화의 생산성이 떨어짐을 의미하며 고용을 더 창출할 여지가 없음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물론 이러 현상도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보다 정확하게는 중국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던 세계의 굴뚝에서 반도체, 전자제품, 자동차와 같은 우리나라의 주력수출품목인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빠르게 경쟁력을 확보함에 따라 국내산업에서의 구조조정이 급속히 일어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즉 이공계 기술인력마저도 산업적 수요예측의 측면에서 보면 단지 공대를 나왔다고 해서 기업에 취직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갑자기 '생각의 근육'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왜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측면을 이야기했을까요? 이는 공대교육으로 표방되는 공돌이를 대량 양산하는 교육과정의 경쟁력이 이제 사라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이공계생은 하나의 부품처럼 하나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생산라인에서 어떤 부여된 과제를 수행하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이공계인재는 정말 능력 있는 고급인재가 아니고서는, 즉 새로운 사회적 수요를 미리 예측하고 그에 맞는 사회적 비전에 맞는 제품을 디자인하고 설계하며 생산할 수 있는 3박자가 모두 갖추어진 인재가 아니라면 과거 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하여 20년 정도를 머물며 부를 축적한 선배세대의 생활수준을 영위하지 못할 것으로 많은 이들이 예측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현재 대학에 다니려고 하는 혹은 다니고 있는 많은 이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본인의 학벌을 세탁하고자 하는 데 쏟아부어야 할 시간을 오히려 다가온 사회의 변화를 공부하고 이를 대비하는 데 쏟아부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문장이 너무 추상적이라면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이 보다 더 좋은 지침이 되지 않을까요? 즉 여러분은 대기업의 사원처럼 행동할 것이 아니라 대기업의 CEO처럼 행동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기술적 흐름과 사회적 수요를 예측하고, 그리고 필요한 인재들과 함께 그러나 예측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여 시장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면에서 흡수한 지식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하며 이렇게 재구성한 지식의 도서관에서 이제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제 슬슬 제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네요. 너무 먹고사니즘에만 치우쳐 이야기를 전개한 감이 있지만 사실 우리가 삶의 의미를 보다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혹은 삶에 있어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무력감, 우울감, 권태 등의 감정적 독감들에 대항하기 위한 정신적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야 말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고 이런 정신의 면역력은 무용해 보이는 무언가를 하면서 느끼는 유희의 감정을 통해 길러짐을 알아야 합니다. 글쓰기, 춤추기, 노래하기, 체육활동 등등 의식주를 영위하는 것과 무관해 보이는 일들에 몰두하는 동안 우리는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소유할 수 있고 삶에 긍정적 에너지를 얻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너무나도 건조한 현대사회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