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분학이 어렵다는 학생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기초교양교육의 현주소

by 오마르 왕자

다양한 학교의 여러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최근에 공유하게 된 이야기는 학생들이 미적분학을 어려워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서울의 명문대학과 인서울 중위권 대학, 지역거점대학, 지방의 사립명문대학들에 공히 나타나고 있는 현상으로 파악되며 계통적 학습을 필요로 하는 수학이란 과목을 학생들이 체감적으로 어렵다고 느끼고 있음을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학업성취도가 낮아졌다는 사실과 신입생들 간에 학력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러한 조사를 실시하던 때에도 학생들이 미적분학이란 과목을 체감적으로 어려워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본인이 공부를 안 해서 혹은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이라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는 변명이 흔하게 회자되었을 뿐 선생님의 수업을 버겁게 느끼는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그 숫자가 미약했었다.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교양필수과목으로서 미적분학은 4년제 대학이 설립된 이후로 이공계학생들이 반드시 수강하는 과목으로서 오랫동안 필수교양의 한 축을 담당해 온 과목이자 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들이 어느 정도 반복되어 나타나는 구조로 인해 학생들이 비교적 손쉽게 학점을 딸 수 있었던 과목이었다. 온라인 수업의 형태가 나타나기 이전 학생들은 미적분학을 체감적으로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았으며 객관식이 아닌 주관식 단답형의 문제들로만 구성된 시험을 치르는 데 있어 어려움을 느꼈다면 2025년 현재 학생들은 미적분학에서 배우는 내용을 어럽다고 느끼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어 그 상황이 훨씬 심각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학생들은 새롭게 배우는 과목이 아닌 도합 12년 동안 공부한 수학 과목을 어려워하는 걸까?


몇 가지 원인을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첫째, 의치한, 수의대 약대를 진학하기 위해 수능에서 출제되는 고난도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과 적당한 3점짜리 문제들을 풀고 최저등급만 맞추려고 하는 학생들 간에 전략적 양극화가 더욱 극심해져 대부분의 학과에 입학한 학생들은 계통적 학습-수학이론의 심화와 연계성에 대한 학습-보다는 거꾸로 된 학습법, 즉 먼저 문제를 보여주고 문제가 속하는 단원에 관련된 내용을 정리하고 어떻게 푸는지 풀이전략을 이야기하는 학습법에 의존하여 입시를 치렀다는 점이다. 그 결과, 그들이 쌓은 지식들은 따로 망망대해에 듬성듬성 보이는 섬들처럼 서로 연결되지 못한 상태로 존재하는 것 같다. 시험에 나올 법한 혹은 자주 출제된 기출문제들의 풀이법을 암기해서 그와 유사한 문제들 혹은 숫자만 달라진 문제를 풀다 보니 핵심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써 주어지는 연습문제와 내용의 이해를 바탕으로 물리나 화학, 또는 생물과 관련된 응용문제를 푸는 데 많은 어려움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다.


둘째, 학생들이 느끼기에 미적분학이란 과목자체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의 양이 매우 많다는 데 있다. 수능시험이 선택과목체계로 바뀌게 되면서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의 비중은 많이 줄어들었는데, 예를 들면 확률과 통계, 혹은 기하를 선택과목으로 택한 학생들은 삼각함수나, 지수함수, 로그함수에 대한 미분이나 적분을 학습하지 않고 대학에 진학하게 되며 역으로 미적분을 선택한 학생들도 기하를 듣지 않고 입학하게 되면 2학기 미적분학의 주된 내용인 다변수 함수와 공간의 관계에 대하여 매우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고교에서는 대학에 가서 새롭게 배우면 된다고 하지만 대학 수업은 고교에서 가르치는 시간의 절반도 되지 않으며 그 마저도 문제 풀이 위주의 수업이 아닌 계통적 학습과 위계적 층위의 학습을 지향하므로 처음으로 접하는 내용을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 강한 지적 호기심으로 여러 가지 내용들이 위계적으로 전개되는 강의의 흐름을 쫓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풀이를 위한 지식전달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과거에는 지식을 배우는 것의 목표가 문제풀이였지만 대학에서 출제되는 문제들이 묻고 있는 것은 지식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여부이므로 오히려 기본적이며 직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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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흔히 행하는 실수는 기초과목에 붙은 기초라는 표현에 대한 오해다. 대다수의 경우에 기초, 기본 이런 단어는 입문, 초보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져 무언가 쉬워야 할 것처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수학에서 기초, 기본은 입문, 초보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보통 “Basic”, “Elementary”과 같은 단어를 번역하면서 쓰게 된 용어들이다. 마이클 더글라스와 샤론 스톤이 주연했던 영화 “Basic Instrinct”를 기본 본능 혹은 기초 본능으로 번역하지 않고 원초적 본능이라고 번역한 것을 살펴보면 ”Basic” 혹은 “Elementary”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 또는 ‘모두에게 반드시 있는’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대학 수학을 기초교양이라고 할 때 학생들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누구나 알아야 할 내용이며 모르면 교양 없는 이로 취급받는 과목이라는 것이다. 교양이란 사람과 사람을 구분 짓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잣대로서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신분증과도 같은 개념이다. 오페라 음악에 대한 교양이 없는 인간은 라디오에서 아리아가 흘러나온다면 채널을 돌려버릴 것이며 인상파 사조에 대한 교양이 없는 인간은 미술관에 걸어놓은 세잔의 그림을 그냥 지나칠 것이다. 이처럼 식별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숨길 수 없는 인간의 관심사는 익명성을 기반으로 침묵하는 개인들 간 구분을 드러내는 중요한 경계를 만들어낸다. 소설가 김영하는 최근의 산문집 ‘단 한 번의 삶‘에서 ’ 교양‘을 갖추기 위해 분투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지금껏 교양인의 흉내를 내고 있지는 않은지 회의에 빠져드는 자신을 고백하면서 경계에 놓여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어딘가 잘못 서있는 자신에 대한 어지러움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의 이러한 심정은 예민한 작가의 감성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현실에서 느끼는 초대받지 못할 자리에 초대받는 감정을 느끼는 것과 동일한 감정이다.


그런데 수학이 교양이란 생각을 밀고 나가다 보면 왜 이 과목이 그렇게나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과목인지 조금은 이해될 법도 하다. 소설가 김영하 선생이 이야기했듯 미소를 지으며 수학의 아름다움과 정교한 논리적 완결성에 대하여 설명하는 우리들을 바라보면서 학생들은 -그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교수님이 가지고 있는 ‘교양’이 부러워 나에게 눈길을 주겠지만 그들이 기울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양인의 흉내를 내는 것이 종국에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명품을 가져본 적도 본 적도 없는 내가 명품에 대하여 공부한 다 한들 명품의 가치를 알 리 없을 테니 백화점 1층은 나에게 의미 없는 공간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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