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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마르 왕자 Aug 13. 2022

교육 불평등과 대한민국의 위기 4

-모두가 판박이인 대학들- 

일전에 광주에 가서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상무지구에서 찍은 사진을 지인에게 보내주었더니 사진을 본 지인은 나보고 서울에 갔냐고 되물은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 지방 도시조차 어김없이 강남을 본떠서 도심을 개발하여 그 도시의 번화가란 곳에 가면 '노포'도 없고 모두 번쩍이는 간판과 모던한 인테리어를 갖춘 식당들과 전국 어디에나 있는 *벅스, *썸 플레이스가 있다. 평소 공간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말을 건네는 건축가 유현준에게 이러한 특색 없는 공간을 지방에서 마주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리라. 그렇다면 지방에 있는 대학은 어떨까? 공간의 사회학이란 현학적인 이유를 가지고 오지 않더라도 지방에 있는 대학일수록 필자가 보기에 그 지방 고유의 문화적 색채와 향토색을 반영한 고유한 공간-꼭 건물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교토대학처럼 철학자의 거리나 사색의 정원 같은 공간이어도 된다.- 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제주대학처럼 한라산을 병풍 삼아 그리고 제주바다의 풍광을 마치 호수 삼은 곳은 더할 나위 없다.   


건축학과나 미술대학이 사각형의 네모난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 대학들이 얼마나 많은지. 물론 그 안에 들어가면 촘촘한 네모난 구획들이 나뉘어 일자로 구성된 공간이 나타나고 네모난 계단이 나타나는 '전형적'이다 못해 심심한  공간이 펼쳐진다. 어떤 이들보다도 독창적이며 고유한 작품들을 생산해내야 하는 단과대들이 그런 네모난 공간에서 과연 상상력을 얼마나 펼칠 수 있을까? 서울대의 어느 학과 건물에 들어가 대화와 소통을 강조하는 교수들의 굳게 닫힌 문을 쳐다보면서 복도를 서성거리는 이방인의 실루엣을 보았다. 한 때 작은 음악회도 열었던 공간은 광합성을 위해 담소를 나눌 벤치조차 없어져 강의와 학점 이외에는 소용없는 대학의 쓸모에 대한 쓸쓸함이 밀려왔다. 


건물과 건물에 막혀 창을 열어 다른 이가 사는 아파트 창을 마주해야 하는 수도권 대학들의 열악함을 어떻게 학생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때로는 고도 제한, 그린벨트에 묶여, 때로는 대학을 포위하는 아파트에 막혀 더 이상 확장할 수 없는 수도권 대학들의 고충은 사실 주차문제라는 것을 학생들은 알까?  이화여대의 ECC는 옆으로 확장할 수 없는 대학이 나름 독창적으로 문제를 해결한 경우다. 현대식 건물이라고 짓지만 비가 오면 비가 새서 빗물받이를 가져다 놓은 광경은 실소를 머금게 한다. 


아름드리 나무들로 이루어진 오레곤 대학의 캠퍼스나,  작은 자연스러운 돌들로 이루어진 담벼락이 길 따라 이어져  있는 인디애나 대학의 캠퍼스처럼 고유한 특색이 있는 캠퍼스는 학생들에게 추억을 선사하며 그 자유로움과 인문적 정서를 제공해주는 중요한 배경이 된다. 150년이 넘는 대학의 건물을 아직도 쓰고 있는 유럽의 많은 대학들은 또 어떠한가? 레만 호수를 가로질러 도착한 로잔공대는 독특한 대학도서관과 모든 건물이 연결된 통로로도 유명하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에 있는 미북단의 미네소타 대학의 지하공간은 또 어떠한가?  


공간적 설계도가 없이 너도 나도 10층 건물을 지어 올리는 한국의 대학들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획일화된 사회의 축소판처럼 표준적이다 못해 단조로워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효율만 있을 뿐 미학이 없고, 손익은 있을 뿐 감성이 없는 공간 속에서 졸업 후 학생들에게 남아있을 대학의 풍경과 추억은 과연 무엇일까?  고유의 학풍은 정신적인 유산이기도 하겠지만 대학이 가진 공간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지역대학이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수도권 대학을 모방하고 쫓아가려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만의 전통과 문화를 창조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고유한 자연환경과 특성을 반영하는 공간을 가꾸는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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