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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재천 Mar 29. 2024

프레스톤, 전남 순천 복음화의 초석이 된 선교사

교회 설립 외 순천 매산 중학교 및 알렉산더 병원 건축

존 페어맨 프레스톤 선교사(변요한, 1875-1975)는 한국에서 37년간 사역하고, 순천 복음화의 초석이 되었다. 순천 교회, 매산 학교, 순천 알렉산더 병원 등을 설립하였다.


그는 1875년 미국 조지아 주에서 출생하여 킹 대학과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03년 남 장로교 선교사로서 부부가 함께 내한하여 목포에서 선교를 시작하였고, 해남과 강진에 복음을 전하였다. 그해 목포에서 활동하던 유진벨과 오웬이 광주로 떠난 후 프레스톤이 사역을 어어받은 것이다.

그는 1905년에는 목포 영흥학교 교장으로 학교 건물을 건축하였고, 강진의 학명리 교회, 매곡 교회, 해남의 원진, 맹진, 남창 교회를 개척하였다.


1907년에 광주에서 사역하던 오웬 선교사가 순직하면서 광주로 사역지를 옮겨서 오웬의 후임으로 활동했다.

그는 광주에서도 교육 선교에 헌신하여 1908년 광주 숭일학교 초대 교장을 맡아서 1910년에는 학교 건물을 건축하였다.


그 후 그는 유진 벨과 함께 순천을 포함한 남해 지방을 방문하였다. 보성, 고흥, 순천, 여수, 광양, 구례 등지에 이미 여러 교회가 설립된 것을 보고 이들 남해 지역을 관할할 순천 선교부 설립을 건의하였다.


 1911년 그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순천 선교부 설립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 후 순천에 토지를 매입하고 건축을 추진하였다. 그는 1912년부터 순천에 거주하면서 사역하였고 1913년 4월 선교사 주택을 건립 후 가족이 모두 이사하였다.


그는 1911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가서 순천 선교부 건립을 위한 재정 후원자 와츠를 만나 재정을 약속받았다. 그 후 순천 지역에 교회, 학교, 선교사 거주 가옥 및 병원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 순천 선교부는 프레스톤의 시작으로 로버트 코이트(1913, 복음), 티몬스(의사), 그리어(간호사), 크레인(1913, 남학교 교육), 듀푸이(여학교 교육), 비거(여성사역, 성경학교)가 부임하여 각 분야별 선교사들이 활동하였다. 순천의 교회, 학교, 병원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왔고 당시의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그는 1910년 코이트(고라복)와 함께 순천 매산 중학교를 설립하였고, 초대 교장은 코이트 선교사가 맡아 운영했다, 1935~36년 프레스톤 선교사도 잠시 매산 중학교 교장을 맡았다. 또한 2개월간 한국 선교사로 사역했던 알렉산더의 후원을 받아 티몬스 선교사와 함께 순천 병원을 설립하고 병원 명을 알렉산더 병원으로 명명하였다.

* 알렉산더 선교사는 한국 선교사로 2개월 활동 중 부친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대규모 농장을 이어받아야 했기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한국을 사랑하여 재정으로 순천 알렉산더 병원 설립을 후원하였다.


  농촌 지역 지도자 양성에 관심이 많아 달성경 학교를 설립하여 지도자를 양성하였는데 후에 순천 성경학원이 되어 많은 농촌지역 목회자를 배출하였다.


그는 순천에서 가곡리 교회와 평중리 교회, 사룡리 교회 설립에 기여하였고, 1918년에는 순천읍 교회에서 시무하였으며 교회 역사 수집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1년부터 1923년까지 3년간 여수에서 사역하였다. 여수 교회, 장천 교회, 봉양 교회, 우학리 교회, 여수 서 교회, 봉전리 교회, 서정 교회에서 동사 목사로도 시무한 기록이 있다. 또한 순천 노회장을 지내며 여수와 순천지역 여러 교회의 설립과 당회를 조직하는 등 폭넓은 활동을 하였다. 이외에도 완도 관산리 교회와 진도 분토리 교회를 설립하였고, 나주, 해남, 무안에서 시무하였다.


1940년 일제의 강제 추방으로 미국으로 돌아갔고, 조지아 주 데카티 교회에서 활동하다가 1975년 4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가족으로는 부인 안니 윌리(Annie Willey)와 슬하에 7자녀를 두었다.


부인도 프레스톤을 도와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사역에 적극적이었고, 매산 여학교 교사로도 활동하였다. 양화진에는 1904년에 태어나서 한 달 만에 사망한 그의 아들 사무엘이 안장되어 있다. 또한 1909년 출생한 프레스톤 주니어는 한국 선교사로 와서 8년간 알렉산더 병원과 광주 기독병원에서 헌신하였다. 현재 순천에는 프레스톤 가족이 살던 주택이 남아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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