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필드, 경북 동해 지역에 복음 전한 선교사
내한 선교사 중 가장 먼 거리를 길어 다니며 순회전도
윌리스 그린필드 선교사(권필두, 1881~1917)는 경북 북부 지역에 복음을 전하였다. 10년이 안 되는 기간을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온몸을 던져 활동한 여파로 36세의 젊은 나이로 소천하였다.
그는 스코틀랜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 캐나다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시라큐스 대학과 어번 신학교를 졸업하였고, 1907년 5월 마우와 결혼하였다.
결혼한 그해 여름 아내와 함께 미국 북 장로교 선교사로 파송받아 내한했다. 서울에서 한국 문화에 적응한 후 경신학교 교사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1년간 경신학교 교장(밀러 교장 안식년 기간)으로 헌신한 후 서울과 경북지역에서 복음 전하는 사역에 전념하였다. 그는 서울 명륜 중앙교회 설립을 도왔고, 청송 수락 교회, 구미 옥계 교회가 설립을 협력하였다.
그의 아내 마우드는 정신 여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사역을 시작하였다. 2년 후 1909년 정신여학교의 6대 교장으로 취임했으나, 안타깝게도 이듬해 1910년 1월 출산 후유증으로 소천하고 말았다. 그녀의 유해는 양화진에 안장되어 있다.
1910년 아내의 소천으로 일시 귀국했다가 1912년 2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대구 선교부에 소속되어 경북 북부 지역인 안동 및 영일 등 동해안 지역을 순회하면서 교회를 개척하였다. 칠곡 남율 교회, 영일 대전교회(1914), 경산읍 교회(1914)를 설립하였다.
그는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였는데, 내한 선교사들 중에 가장 먼 거리를 걸어서 복음을 전한 선교사이다. 1913년 한 해 동안 6천 리(우리나라 전체 거리의 2배)를 걸어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처럼 몸을 돌보지 않는 전도활동을 전개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1914년 12월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미국에서 과거 경북 선교사로 함께 활동했던 밀즈 선교사와 재혼하였다. 재혼 후 함께 다시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하려는 소망을 품었지만, 1917년 12월 별세함으로써 그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 안나 레아 밀즈는 1908년 내한하여 대구 및 경북 지역에서 3년 반 동안 여성 전도 사역에 헌신하였다. 당시 아담스 부인과 존슨 부인을 도와서 활동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