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가렛 알렉산더, 부산과 통영에서 교육선교사로 활동

30여 년을 경남 지역 순회 선교사로 복음의 통로 역할

by 신재천

마가렛 알렉산더 (1885~1967, 안진주) 선교사는 평생 독신으로 여성 교육 및 순회 전도자로서 30년간 부산과 통영에서 활동하였다. 자신의 특별한 성과보다 묵묵히 주 사역지의 공백 기간을 잘 커버하며 사역하였다.


그녀는 1885년 호주 빅토리아 주 몰트레익에서 태어났다. 그 후 멜버른에서 장로교 여학교를 졸업하고, 멜버른 대학에서 외국어를 공부하였다. 그 후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해외 선교사로 헌신할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해외 선교 교육 기관인 여성 지도자 훈련원에서 훈련받고 한국 선교사로 파송받았다.


그녀는 1911년 1월 멜버른을 출발하여 2월에 부산에 도착하였다. 그녀가 부산에 도착할 때 마가렛 데이비스가 진주로 전임하게 되어, 그녀가 일신 여학교에서 교무 주임으로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 후 한국어 실력이 향상됨에 따라 1912년부터 수업을 맡았고, 1913년에는 일신 여학교 3대 교장으로 취임하여 약 2년간 헌신했다.


1915년 마가렛 데이비스가 진주에서 사역을 마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옴에 따라, 일신여학교 교장 자리를 양보하였으나, 마가렛 데이비스가 다시 안식년 휴가로 자리를 비우게 되어 1916년 4월까지 교장 역할을 수행한 후 마가렛 데이비스에게 인계하였다.


그녀는 부산에서 활동하는 기간에는 일신 여학교 사역 외 지역 교회 순회, 여자 성경학교 공부반 인도, 한센병 병원 봉사 등 여러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녀는 1918년 안식년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서 부산 및 경남 지역 순회 선교사로 활동을 시작하는 즈음, 당시 통영에서 사역하던 왓슨 선교사가 안식년을 떠나서 그녀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1918년부터 통영으로 이동하여 사역을 하게 되었다. 통영 지부는 현재 충무교회 인근에 진명 유치원, 진명 여학교(초등과정), 진명 야학교(실업 과정)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과거 유치원 교사 경험을 토대로 학생들을 잘 양육하였다.


1921년에는 부산지부에서 순회 전도자가 필요하게 되어 다시 그녀를 부산지부로 초청하여, 그녀는 경남 동부지역 (울산, 언양, 김해, 밀양 등) 순회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그녀는 13년간 지역을 순회하며 목음을 전하였고 동시에 나병원 여성 환자를 돌보고, 유치원 교육, 성경공부 교사로 사역하였다.


그 후 1934년부터 1939년까지 5년간 다시 통영으로 가서 욕지도, 사랑도, 노대도 등 섬 지역을 순회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다가 1939년 부산 동래 여자 실수 학교를 맡아서 1년간 협력하고 (동래 실수 여학교 설립자인 에디스 커의 안식년으로 자리를 비운 기간) 다시 통영으로 돌아가서 사역하였다.


그녀는 교육 선교사로서 유치원 설립, 부산 일신여학교 및 통영 진명여학교 운영에 협력하였고, 또한 순회 전도자로서 경남 동부 지역 및 통영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일생을 바쳤다. 그녀는 따뜻한 성품으로 한국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여자 아이 김복순을 양녀로 삼아 잘 양육하였다.


그녀는 경남 욕지도 성도 권바울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았는데 이 편지는 그녀의 후손이 보관하고 있는 것을 어느 신학교 교수가 받음으로써 알려졌다.(책, 호주 선교사 열전에 기록) 편지 내용은 감사 내용으로 되어 있는데, 작성자는 장애인인데도 불구하고 선교사님의 방문과 따뜻한 호의에 감사하는 내용으로 적혀있다. < 나 더러운 병신을 특별히 위하시던 은혜는 태산과 같사오나...>


그녀는 1940년 일선에서 은퇴하고, 1941년 4월 고국인 호주로 돌아갔다. -끝-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가렛 데이비스, 오직 일신여학교 교장으로 25년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