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두원(말스베리) 선교사 이야기

한국 유명 음악가 양성 및 강원도 선교로 일생 바침

by 신재천

드와이트 말스베리 선교사 (마두원, 1899~1977)는 음악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였다. 해방 후 부산과 강원도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하며 일생을 한국 복음화에 헌신하였다. ​

그는 1899년 5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스톡턴에서 태어나서 1920년 프레스노 초급 대학을 졸업하고 1924년 시카고 셔우드 음악대학을 졸업하였다. 그 후 대학원에 진학해서 계속 음악을 공부했다. 시카고 시세로 교회 담임 목사님의 영향을 받아 선교사의 비전을 품었다.


그는 1929년 8월 미국 북장로회의 교육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숭실학교의 요청으로 한국행을 결심했으며, 1922년 결혼한 부인 폴린과 함께 내한했다. 그는 평양에서 한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평양 숭실학교 및 평양 외국인 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숭실학교에서 음악 이론과 함께 피아노를 가르쳤고, 실내 오케스트라단과 야외 브라스 밴드를 교육했다. 브라스 밴드는 전도할 때 큰 도움이 되어 주일 오후마다 평양 거리를 다니며 연주하고 전도지를 나눠주었다. 그가 길러낸 제자 중에는 작곡가 김동진, 전 연세대 음악대학장 박태준, 작곡가 안익태, 오페라 가수 채리숙, 피아니스트 한동일, 백건우, 김애자 등이 있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그는 1936년 학교를 사임하고 자신의 집에서 기도회를 가졌는데, 이 집회에 열심히 참석했던 숭전 학생들 가운데는 강태국, 박윤선, 방지일 등이 참석했는데 후에 한국 교계의 지도자들이 되었다.


결국 그는 1940년 일제로부터 강제추방 당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에 돌아가서는 시카고 시세로 교회에서 목회하였고 캐나다 프레이리 성서 학원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학을 가르쳤다. 또한 페이스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8년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남북 분단으로 인해 평양으로 갈 수 없었던 그는 부산에서 구호사업을 펼치면서 음악 교육을 실시하고 교회를 개척했다. 그는 부산에서 고려 성경 고등학교를 설립하고 학생들에게 영어와 음악을 지도했다. 또한 고려 신학교(고신대)에서 강의했다.


6·25 전쟁 후 KBS에서 방송 전도와 음악교육을 병행했고 매킨타이어가 주도하는 국제 기독교 연합회(ICCC) 운동에도 깊이 관여해 한국지부장을 맡기도 했다. 1953년 휴전 후 전쟁 중 강원도에 세운 야전병원을 미군 사령부의 협조로 선교의 전초기지로 활용했다. 선교 본부로 사용된 홍천군 두촌 병원은 전쟁 당시 코드명인 제이드를 사용하여 제이드 병원으로 불렸다. 병원 앞쪽에 있던 두촌 교회를 새로 단장하고 교역자가 세워서 지역 전도에 앞장섰다.


홍천군 제이드 병원과 두촌 교회를 중심으로 강원도 병원 사역과 전도와 교육사업을 전개했다. 처음에는 서울을 오가며 사역하다가 60년대 후반부터는 제이드 병원에 거처를 두고 강원도 사역에 집중했다. 그는 홍천 지역에 원동 교회, 희망 교회, 결운 교회, 장남 교회 등 26개 교회를 설립하였다. 또한 산간 마을을 돌며 화전민을 돌보고 복음을 전하였다. 산간지역의 청소년들을 위해 두촌에 페이스 성경 고등학교를 세워 학생 교육에 힘썼다.


1977년 7월 강원도 두촌에서 선교지부 회의 가던 길에 교통사고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장례식은 성결교 신학교 강당에서 거행됐으며, 일산 기독교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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