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티 테이트, 전주 기전 여학교 설립 등 전북 개척자

선교 초기 동학혁명 등 온갖 어려움을 겪은 여선교사

by 신재천

메티 테이트 선교사(최마태, 1864~1940)는 남 장로교 7인 개척자 중 한 사람으로서, 평생 독신으로 44년을 전북 지역 복음화 및 여성 선교를 위해 헌신하였다.​

그녀는 미주리 주 칼라웨이 카운티에 속한 풀턴에서 1864년 11월 태어났다. 1892년 11월 남 장로교 선교사로서 오빠 루이스 테이트와 함께 내한하여 서울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1894년 2월 선교부에서는 그녀를 전주로 배속했다. 그래서 오빠와 함께 전주로 이동하여 6주 간을 지내며 여인들에게 전도지를 나누어 주며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동학혁명이 발생하여 서울로 철수하라는 공관의 명령으로 서울로 돌아왔다.


1895년 3월 다시 전주에 와서 오빠의 사역을 도우면서 여성에게 전도하는 일을 맡아서 활동하였다. 주일이면 테이트 남매가 살고 있는 초가집에 찾아오는 여성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남자는 오빠 루이스가 복음을 전했다. 그녀는 우리말을 유창하게 구사하여 가정을 방문하여 여성과 어린이 전도에 주력했다. 테이트 남매의 집에서 시작된 예배가 전주 서문교회가 되었다.


1897년 최초로 5명이 세례를 받고 전주의 첫 열매가 되었다. 그녀는 교회에 주일 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쳤고, 별도 성경 학교를 개설하였다.


1897년부터 전주 선교부가 구성되면서 의료 선교는 해리슨 선교사가 담당하고, 서문 교회는 레이놀즈 선교사가 담임하게 되었다. 그녀는 오빠와 함께 전주 인근 지방에 복음을 전하는 역할을 맡아서. 금산, 정읍, 태인, 부안, 임실 등 지역을 순회하며 전도하여, 이 지역에 78개 교회를 설립하였다


또한 교육 선교 활동을 전개하여, 1900년에는 전주에서 6명의 여자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전주 기전 여학교의 시작이 되었다. 그 후 기전 여학교는 1904년 메리 전킨에 의해 체계화되고, 1907년 교육 선교사인 랭킨이 부임하여 더욱 발전하였다.


그녀는 한국 초기 여성 선교사로서 동학 혁명 시기의 어려움과 동료 선교사의 순교를 보면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호남 지방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것이다.


그녀는 1935년 72세 나이로 44년을 헌신한 이 땅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에서는 조카의 집에 기거하다가 1940년 77세의 일기로 소천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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