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니 데이비스, 호남 최초 순교한 개척 선교사
병원 환자에게 복음 전하다 감염되어 순교
린니 데이비스 선교사(1862~1903)는 남 장로교 개척 선교사 7인 중 한 사람으로서 독신으로 내한했다. 병원에서 어린이 환자를 돌보며 전도하다가 자신도 감염되어 41세에 소천하여 호남 지방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그녀는 미국 버지니아 주 안뱅돈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신앙이 독실한 어머니 아래 성장하였다. 한국 선교 동기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강연으로 한국에 선교사가 절실하다는 말을 듣고 결심했다.
1892년 10월 남 장로교 최초로 한국에 도착했다. 남 장로교 7인의 개척자 일행보다 1개월 먼저 도착한 것이다. 그녀가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 어머니가 중병으로 위독하여 출발을 연기하려 하였으나,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 만나자>로 말하면서 강력히 떠나라고 권고하여 일정대로 한국행 배에 몸을 실었다. 그녀가 한국 도착 9일 만에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녀는 서울에 도착 후 서대문 미션 회관에 머물면서 전도를 시작하였다. 낮에는 가정 심장, 밤에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성경과 찬송을 가르쳤다.
그리고 1896년 군산 선교부에 배치되면서 군산으로 내려와서 어린이와 부인을 대상으로 전도 활동을 전개하였다. 가정 방문을 통해 한 해 천오백 명 이상을 전도한 기록이 있다.
1898년 4살 연하인 해리슨 선교사와 결혼한 후 남편이 거주하는 전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남편이 운영하는 약국에서 환자를 돌보았다. 해리슨 목사는 의대를 공부하다가 신학교로 변경하였기에 의료 지식은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여의사 잉골드가 전주에 오면서 의료 사역은 잉골드에게 인계하고 부부는 전도와 교육에 전념하였다. 그녀는 집 사환인 김창국 소년에게 성경을 가르쳐서 훗날 목사로 되게 했다.
그녀는 특별히 전도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가정과 병원을 방문하며 전도하였고 특히 전주 예수병원을 자주 방문하여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1903년 6월 전주 예수병원 어린이 환자를 돌보다가 자신도 감염되어 41세의 젊은 나이로 소천했다. 결혼하고 5년 만에 일이었다. 선교사들은 그녀의 죽음을 보고 《목숨 바쳐 헌신한 여장부》로 불렀다.
그녀는 호남 지방 최초 순교자가 되었고 전주 외국인 묘지에도 최초 안장되었다. 1958년 군산 영명고 학생들이 군산 구암에 그녀의 기념비를 만들었으며, 그 후 그 땅이 개인에게 팔려 사유지가 되면서 전주 외국인 묘지에 기념비가 옮겨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