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맥컬리, 원산 대각성 운동 도화선이 된 선교사

소래에서 순교한 맥켄지 선교사 약혼녀

by 신재천

루이스 맥컬리 선교사(이루이시, 1864~1945)는 소래에서 순교한 맥켄지 선교사의 약혼녀로서 원산과 함흥 지역에서 교육과 여성 사역 중심으로 34년 헌신하였다.

원산 대각성 운동의 도화선이 된 사경회를 시작하였고, 원산 마르다 윌슨 여자 신학교 설립 및 한국 여 전도회를 만든 선교사이다.

그녀는 캐나다 동부 노바스코티아의 트루로에서 태어나서 목회자 가정에서 성장하였다. 캐나다 최초 선교사 맥켄지와 대학 시절에 만나 약혼하고, 먼저 내한한 멕켄지를 따라서 한국 선교를 작정하였다.

당시 약혼자인 멕켄지의 한국 파송이 캐나다 장로교 교단에서 재정 문제로 거절되면서,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브라가 선교회가 만들어지고 1년 거주할 수 있는 후원금을 조달했다.


그녀는 1895년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도중 약혼자의 순교 소식을 접하고 비운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약혼자가 사역한 소래에 도착하여 유품을 정리하고 비석을 세웠다.

< 맥켄지 목사가 열심히 전도하더니 열병에 정신 없어지니, 일동이 애석해하며 다 주를 믿는지라, 밀알 하나가 떨어져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함이 옳도다.> 그리고 그의 사역비 3천 불을 소래 교회에 헌금하였는데, 훗날 이 기금이 해서 제일학교 설립의 기반이 되었다.


그 후 그녀는 1897년 중국 선교사로 사역을 시작하였다. 1900년 의화단 사건으로 모든 선교사가 중국을 철수할 때 그녀는 선교지를 한국으로 변경하였다. 그녀가 한국으로 오는 배에는 맥래 선교사 부부(일본에서 결혼하고 오는 길)가 함께 승선하였는데 이때 친분으로 그들과 함께 함흥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1903년 중국에서 함께 사역했던 화이트 선교사가 원산에 휴가차 왔을 때 기도의 필요성을 공감하여 기도회를 시작했다. 8월 14일부터 8월 30일까지 실시했는데 강사로 초청된 하디의 회개 설교로 인해 참석한 선교사와 한국 성도들이 눈물로 회개하였다. 이것이 원산 대각성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고, 1907년 평양 대각성 운동으로 확대된 것이다.


그녀는 1909년 함흥 여 전도회를 설립하였고, 이것을 계기로 전국 여전회가 창설되었다. 그녀는 초대 여 전도회 회장으로 전도인 양성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원산에서 성경학교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1931년 마르다 윌슨 여자 신학원으로 발전하였다. 이 신학원은 한국 최초 여성 신학교육 기관이 되었다.


*마르다 윌슨 여신학교는 그 후 성진으로 이전하였고 1915년 원산 진성 여학교 구내로 이전되어 여성 인재를 양성하였다. 1944년 일제에 의해 폐교될 때까지 이 학교를 통해 많은 기독교 여성 지도자 및 민족 지도자가 양성되었으며, 김 마리아 등 독립 인사들이 이곳에서 교수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 학교를 복원하려 하였으나 공산당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마르다 윌슨은 멕컬리의 어머니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녀는 1913년 <예수 행적도>를 저술하여 공과 공부 및 윌슨 신학교 교재로 사용하였다. 이 책은 예수님 일생을 기록한 책인데 그 후 6판까지 인쇄되어 교회에서 많이 활용되었다.


그녀는 함북 성진과 회령에서 활동하면서 복음을 전하였고, 성진에는 보신 여학교를 설립하였고, 1917년에는 함흥 회령에서는 영생학교 교장으로 활동하였다.


항일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감옥을 방문하여 수감된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판사와 검사들을 만나 학생의 석방을 위해 눈물로 호소하였다.


그녀가 안식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영생여고 신축 기금을 조성하여 1929년 영생 학교 여성 기숙사 및 신학교 교사를 완공하기도 하였다.


1934년 70세의 나이로 은퇴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캐나다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45년 9월 고향인 핼리팩스에서 소천하였다.


그녀는 신앙의 한국인을 많이 양성하였는데 대표적 인물로는 조희렴 목사와 김마리아가 있다. 조희렴을 캐나다로 유학시켜 목사로 만들었고 한국인으로서 윌슨 신학교 교장으로 자리를 어어 가게 하였다.

또한 독립투사 김마리아는 미국으로 피신해 있을 때 친분을 맺어 그녀를 한국으로 귀국하도록 도우고, 윌슨 여자신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도록 배려하였다.


* 조희렴 목사(1886~1950)는 최초로 캐나다 유학하였고, 영생학교 교사 및 윌슨 신학교 교장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 남한에서 지도자를 요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북의 교회와 성도를 지키기 위하여 월북하여 1950년 공산당에 의해 학살되었다. 그의 성도들은 1.4 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와서 동대문 근처 창신동에 서울 남부교회를 설립하여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조 목사를 위한 추도회를 거행하고 있다.


그녀의 언니 엘리자베스 멕컬리(이애리사. 1862~1941)도 1907년 선교사로 내한하여 동생과 함께 한국 복음화에 헌신하였다. 1834년까지 사역하다 본국으로 돌아가서 1941년 79세로 토론토에서 소천하였다. 그녀는 1903년 동생의 약혼자 맥켄지의 한국 순교 이야기를 <한 알의 밀알> 제목으로 책을 출간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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