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슨, 호남지역 선교 활동의 숨은 조력자
교회 개척, 학교 설립 및 건물 건축 등 다방면에 활동
윌리엄 해리슨 선교사(하위렴, 1866~1928)는 전주, 군산 및 목포를 순회하면서 지역 선교 센터의 인프라를 확충한 선교사이다. 전주에 테이트, 군산에 전킨, 목포에 유진벨이 개척 선교사라면 해리슨은 3개 지역을 순회하면서 성장을 견인한 숨은 조력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켄터키 주에서 태어나서 켄터키 센트럴 대학 화학과를 졸업하였다. 그 후 루이스빌 의대에 진학하여 1년간 공부하고, 다시 유니온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의 길을 선택하고 졸업 후 안수받았다.
그리고 1894년 남 장로교 선교사로 파송받아 내한하였다. 서울에서 한국어를 익히며 한국 생활에 적응한 후 1896년 유진 벨(배유지)과 함께 나주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려 했다. 그러나 나주 유생들의 반대가 심하여 전주로 이동하였다. 이때 유진 벨은 목포로 갔다.
그는 1897년 전주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당시 전주에는 테이트 선교사가 활동 중이었다. 그래서 그는 서문밖에 약방을 개설하여 환자를 돌보았다. 의대에서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간단한 치료를 하였다. 1898년 남 장로교 개척 선교사인 린니 데이비스와 결혼하여 함께 사역하였다.
그 후 1898년 잉골드 여의사(전주 예수병원 설립자)가 전주로 부임하여 그는 의료 사역을 인계하고 복음 사역에 주력하였다. 1902년 전주 예수병원을 건축 시 그가 주도하여 붉은 벽돌로 병원을 건축하였는데 이것이 전주 최초 서양식 건물이 되었다.
해리슨은 전주에서 장터 설교로 유명하다. 5일마다 장터가 서는 곳에 찾아가서 설교를 하였다. 사람들이 외국인을 보기 위해 장터에 몰려들었기 때문에 효과적인 전도 방법이 되었다.
1903년 부인 린니 데이비스가 전주 예수병원에서 전도 대상인 장티푸스 환자인 어린이를 돌보다가 자신도 감염되어 순교하는 아픔을 겪었다. 결혼 5년째였다.
1904년 그동안 레이놀즈가 가르친 학생들을 자신의 집에서 5명의 교사를 확보하고 교육을 실시했는데, 이것이 전주 신흥학교의 모태가 되었다. 전주 신흥학교는 1906년 니스벹 선교사가 부임하여 학교 사옥을 건축하고 정식 학교로 운영했다. 학교 이름은 처음에는 예수교 학교로 명명하다가 일제의 간섭으로 인해 신흥 학교로 개칭하였다.
그는 1904년 군산으로 거주지를 이동하였다. 군산에서 사역하던 전킨이 호흡기 질환으로 전주로 이동하여서, 그가 군산 지역을 맡아 구암교회 담임 등 지역 교회를 돌보게 되었다.
1906년에는 교회 건물이 일제에 의해 사용 중지되어, 군산 개복동에 개복 교회를 건축하여 이전하였다. 그는 군산 근교 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였는데 웅포 교회, 동연 교회, 무주읍 교회 등을 돌보았고, 1906년 익산 고현교회에도 시무하였다.
또한 군산 영명 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중등과정을 개설하였고, 다니엘과 함께 군산 진료소를 신축하는 등 선교지 조성 공사에도 기여하였다
그는 군산에서 활동하던 1908년 간호사 에드먼즈(1871~1945)와 재혼하였다. 그는 결혼 후 부인과 함께 복음 전도활동에 더욱 주력할 수 있었다. 부인 에드먼즈는 서울 보구여관에서 한국인 간호사 양성을 시작한 최초 선교사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1909년부터 1912까지 3년간 목포를 방문하여 군산의 활동과 동일한 방식으로 사역하였다. 목포 인근 지역인 해남, 강진, 장흥, 영암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였고, 목포 남학교 및 여학교 교사 신축 및 선교센터 내 진료소 구축 등의 사역을 성실히 수행했다.
1915년 은퇴할 때까지 익산, 옥구, 임천 등 군산 동부 구역을 순회하며 개척 교회들을 돌보았는데, 이 시기 익산 송산 교회가 재건되었다.
노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1911년 10월 전라노회 창립할 때와 1917년 10월 전북 노회가 분리 창립 시 노회의 규칙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이후에도 노회 총대 등 노회 활동에 기여하였다.
그는 도시 목회에 안주하지 않고 시골지역 순회전도 활동에 열심인 모습을 볼 수 있다. 군산, 목포 외곽 지방을 방문하고 복음을 전하고 전도 책자를 나누어주었다.
한번 순회 여행을 떠나면 10일~14일 동안 수 백 리를 다녔다. 그의 선교 보고서에서 당시 순회 전도의 일면을 볼 수 있다.
< 첫 번째 전도 여행에서 고산, 여산, 용담, 함열, 임피 등 전라북도 북부 5개 지역을 차례로 돌며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이 순회 전도 여행에는 나와 조사 그리고 교인이 함께 했다. 우리는 10일 동안 300리를 가서 253권의 책을 팔았으며, 500장의 유인물을 나눠주었다. -중략- 두 번째 전도여행에서는 진안, 용담, 무주, 금산, 진안 등 동부 지역을 돌았다. 이번에는 2주간 동안 500리를 여행하면서 책 464권과 유인물 200매를 판매하였고 또 다른 전도지 800매를 배부하였다.>
1928년 1월, 34년의 한국 선교 활동을 마감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귀국 직전 구암교회에서 개최된 전북 노회에서 대표기도를 한 것이 그의 마지막 한국에서의 활동이 되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 2달 만에 소천하여 켄터키 주 레바논에 안장되었다. 그의 묘소에는 두 번째 부인 에드먼즈와 합장되어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