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류, 군산 최초 의료 선교사로 배 타고 환자 돌봄

내가 누워 있으면 조선인이 죽어간다.

by 신재천

앤드류 드류 선교사(유대모, 1859~1924)는 전킨과 함께 개척 선교사로서 군산에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의사로서 활동하였고, 전킨은 교육 부문에서 활동하였다.


군산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인근 지역에는 배를 타고 순회 진료 하며 환자를 돌보았는데, 무리한 탓에 건강이 악화되어 한국 선교 7년 만에 귀국하여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미국 큐렌 시에서 태어나서 햄튼시드니 대학 (1888~1892)과 펜실베이니아 대학 약학과(1883~86)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버지니아 대학교 의학부(1889~91)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그는 1894년 3월 아내 루시 로스와 함께 남 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서울에 머물며 사역지를 물색했다. 그가 내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3월 27일 레이놀즈의 호남 지역 순회 여행에 동참하였다. 인천을 출발하여 군산 방문하고 이어서 임피, 전주, 김제, 영광, 함평, 무안, 우수영, 순천, 좌수영을 거쳐 부산까지 갔다.


그는 호남 지방을 순회한 후 서울로 와서 군산 선교부 설치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사역지를 군산으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남 장로교 선교부에서는 1895년 3월 전킨과 드류 두 선교사를 군산에 배치하여 군산 선교센터를 세우도록 한 것이다.


그해 동학 운동의 발발로 잠시 서울로 철수한 후 1896년 4월에 다시 군산으로 내려와서 의료 사역을 시작했다. 군산 선창가에 집을 구하고, 자신의 집에서 환자를 돌보기 시작했고, 배 한 척으로 고군산 열도에서 강경까지 치료를 위해 다녔다. 1896년 한 해에 2,700명 환자를 진료하고 600건의 간단한 시술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군산 예수병원(구암 병원)의 시작이다.


그 후 남 장로교 선교부가 군산 선교센터를 폐쇄하고 나주로 선교센터를 옮기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드류가 강력히 반대하며 군산 선교센터를 유지시킨 일화가 있다. 당시 군산 선교센터를 폐쇄하려는 이유는 전킨 선교사의 자녀 사망으로 위생의 문제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누워 있으면 조선인이 죽어간다>고 말하며 환자들을 무리하게 돌보다가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결국 1901년 건강 악화로 미국 선교본부에서 귀국 명령이 내려졌다. 그는 한국 선교 7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갔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였다.


2017년 11월 군산시 기독교 연합회는 군산 복음화에 기여한 드류와 전킨 선교사를 기념하여, 군산 수덕산 공원에 기념비 및 표지석을 세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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