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 남 감리회 최초 선교사로 서울에서 활동
고양읍 교회 및 서울 광희문 교회 설립자
클라렌스 리드 선교사(이덕, 1849~1915)는 남 감리회 최초 선교사이다. 고양리 교회 및 광희문 교회를 개척하며 서울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였으나, 부인의 건강 악화로 4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미국 뉴욕 주 사우스 옥스퍼드에서 태어나서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평신도 선교운동 사업의 총무로 활동하였다. 그 후 신학 공부를 마친 후 1878년 남 감리회 켄터키 연회원으로 안수를 받고, 그해 중국 상해로 부임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중국에서는 상해, 서주 등에서 17년 사역하고 한국에 왔다.
남 감리회 한국 선교의 시작에는 윤치호의 공로가 컸다. 그는 미국 유학하면서 한국 소개 등 강연 활동으로 모은 200불을 자신의 출신학교인 에모리 대학 총장에게 기증하며 한국에 기독교 학교 설립을 부탁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남 감리회에서 동양 선교를 주관하던 헨드릭스가 1895년 3월 한국을 방문하였고, 이때 리드 선교사도 동행하였다. 그들은 고종을 면담하였는데, 유능한 교사를 보내달라는 고종의 당부에 따라 남 감리회 한국 선교 추진이 결정된 것이다.
리드는 1895년 10월 내한하여 서울에 선교 거점을 준비하였고, 1896년 8월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이사하였다.
1897년 5월 농촌 지역인 고양에서 남 감리회 최초로 고양읍 교회를 설립하였고, 6월에는 서울 남송현(현 소공동) 리드의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광희문 교회의 시작이 되었다. 현재 광희문 교회에는 파송 선교사가 머물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명칭이 리드 하우스이다.
그러나 리드는 1899년 부인의 건강이 악화되어 미국으로 돌아갔고, 부인이 1901년 소천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동양인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1904년 샌프란시스코에 중국인 교회 및 일본인 교회를 설립하였고, 1906년에는 한국인 교회를 설립하였고 또한 양주삼 목사와 함께 <대도> 월간지를 발행하였다. 그 후 1910년 남 감리회 평신도 선교사업의 총무로 활동하였다. 그 후 1915년 10월 켄터키 주 엘랑거에서 66세로 소천하였다.
아들 리드 2세(이위만)도 의사가 되어 1907년부터 개성에서 21년간 대를 이어서 활동하였다. 개성에 아이비 기념병원을 건립하였고, 1909년 100만 명 구령운동을 주도하며 복음 전도 사업도 활발히 전개하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