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스, 대구 지역 복음의 아버지

대구 제일교회 및 대구 계성고등학교 설립자

by 신재천

제임스 에드워드 아담스(안의와, 1867~1929) 선교사는 대구 및 경북 지역 복음의 아버지로 불린다. 대구제일교회, 계성학교를 설립하고 전 재산을 경북지방 복음화에 헌신하였다.

그는 1867년 인디애나주 맥코이에서 태어나 1888년 웨시번 대학을 졸업하고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1년간 수학한 뒤, 시카고 맥코믹 신학교를 1894년 졸업하였다. 졸업 후 넬리 딕과 결혼하고 북 장로교 선교사로 파송받아 1895년 5월 부인과 함께 한국에 왔다.


그는 먼저 부산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며 사역을 준비하던 중 1896년 11월 대구 선교 업무를 인계받았다. 당시 대구 선교사로 활동하던 매형 베어드 선교사가 서울로 이동하게 되어 후임 선교사로 선정된 것이다.


그는 1897년 5월 대구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그해 11월 남문안 교회(현재 대구 제일교회) 개척 예배를 드리고 담임목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그 후 경북 각 지역에 전도여행을 하며 반야월 교회, 사월 교회 등 많은 교회를 개척하였다. 또한 1899년에는 존슨 선교사를 도와서 대구 제중원(현재 계명대 동산 의료원) 설립에 협력하였다.


그는 교육에도 힘을 쏟아서 1900년 교회 내 대남 소학교를 설립하였고, 1906년 대구 계성학교를 설립하였다. 계성학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니라>를 학교 이념으로 정하고 현재까지 명문 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학교에는 1908년 건축된 아담스 관이 있는데 석재를 이용한 영남 최초의 신식 건물로서 3.1 운동 때 이곳에서 독립선언문을 등사했다.


그는 1918년 건강이 악화되어 선교사 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1920년 9월 다시 돌아와서 활동을 재개했지만 건강이 다시 악화되어, 직접 사역보다 선교사 협력 사역에 치중하였다.


한국을 너무나 사랑한 그는 전 재산을 <아담스 복음전도 재단>을 설립해 기부하여, 대구에 66개, 안동에 7개 교회를 개척하는 등 대구·경북 지역 전도 활동에 사용토록 하였다.


또한 농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를 선교부 구내 밭에 심고 재배했다. 캔자스 주에서 사과를 가져와서 보급했는데, 대구 지형에 잘 맞아서 현재에도 대구 지방은 사과로 유명한 도시가 된 것이다.


* 사과 보급에는 3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째 아담스의 접붙인 묘목 보급, 둘째 존슨의 미접붙인 나무 보급(현재 제일 교회 보존), 셋째 스왈론의 사과 300 묘목 수입하여 대구와 황해도 황주에 나누어 준 이야기가 있다.


그는 1924년 건강이 나빠져 23년을 헌신한 대구를 떠나 귀국하였다. 자신의 사역을 두 아들에게 일임했는데, 대구 사역은 장남 에드워드(안두화) 에게 인계하고, 안동 사역은 차남 벤자민에게 인계하였다.


1929년 6월 25일 캘리포니아 버클레이에서 62세를 일기로 소천했다. 동료 선교사 브루언은 <그의 지혜, 그의 충성, 그의 열정은 동료 선교사들과 한국인 형제들에게 한결같은 영감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구 제일 교회 마당에는 아담스 선교사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의 선교 발자취는 책 〈겨자씨 속에 담은 천국〉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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