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주한 벽은
성장하라는 초대장일지 모른다.

선택이 만든 새로운 가능성

by 신정원

“장애물은 우리가 얼마나 강한지 깨닫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의 이 말은 내가 처음 영어라는 벽을 마주했을 때를 떠올리게 한다. 영어는 나에게 그냥 언어가 아니었다. 나에게 영어는 기회의 문을 막고 있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얻은 첫 직장은 국책연구기관의 디자이너 자리였다. 계약직이었지만, 당시엔 정규직과 계약직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내 주변엔 진로를 이야기해줄 어른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근무했던 연구원은, 몇년 후 심사를 거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평생 안정적인 환경에서 평생 일할 기회가 열릴 수도 있었다. 그 안정감은 월급은 적지만 긴 경제적 불안을 끝내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지 않는 벽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특히 계약직이라는 꼬리표가 나를 차별과 좌절로 이끌었고, 내가 가진 가능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입사 초기, 나는 열정으로 가득했다.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내 디자인으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계약직이라는 꼬리표는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동료들과의 대화 속 은연중에, "너는 우리와 다르다"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내가 아무리 좋은 성과를 내도 해외 출장 명단에서는 늘 제외되었다. 동료들은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성장했지만, 나는 텅 빈 사무실을 지켰다. 가장 큰 이유는 영어를 못 한다는 것이었다. 영어와 상관없는 디자인 업무를 하면서도 기회에서 배제된다는 사실은 더 큰 서러움으로 다가왔다.


영어는 내게 늘 아픈 손가락이었다. 중학교 시절 문법 위주의 수업은 흥미를 느낄 여지조차 없었다. 주어와 동사, 목적어로 얽힌 문장은 마치 암호 같았다. 영어는 늘 점수를 깎아먹는 과목이었고, 나는 스스로 가능성의 일부를 포기했다. “나는 영어랑 안 맞아.” 그게 내 결론이었다. 그러나 계약직이라는 벽 앞에서 영어는 또다시 내 발목을 잡았다.


그 무렵, 항상 나를 지지해주고 힘들고 어려운 환경속에서 열심히 사는 나를 6년간 지켜봐온 남자친구(현재는 내 첫사랑이자 남편)가 말했다. “영어가 힘들면 회사 그만두고 어학연수를 가볼까? 나도 석사 과정이 끝나면 결혼하고 같이 어학연수가서 영어 공부하자.” 그의 말은 내 안의 도전 정신을 일깨웠다.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고민 끝에 결혼과 어학연수라는 새로운 길을 택했다. 평생의 안정 대신 미지의 도전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가진 것을 탈탈 털어 계획을 세웠다. 내가 모은 퇴직금은 결혼식 비용과 어학연수비로 쓰였고, 남편은 감사하게도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 무엇보다, 아이러니하지만 우리는 신혼집을 마련하거나 혼수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대신 우리는 결혼 생활의 첫 시작을 새로운 배움과 도전으로 채웠다.

어학연수 기간의 생활은 일반적인 신혼여행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침부터 밤 8시까지 10시간씩 수업을 듣고, 숙제를 하며 잠들었다. 주말에는 영어 선생님들과 교류하며 영어로 대화하거나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특히, 봉사활동은 내게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우리는 선생님들과 함께 비교적 어려운 마을을 방문해 죽을 만들어 나누어주곤 했다. 그곳의 아이들은 신발도 제대로 없었지만, 그들의 밝고 행복한 웃음은 여전히 내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다.


또 다른 기억은 어학연수 중 겪었던 심각한 홍수 상황 중 일어난 일이었다. 다행히 내가 살던 지역은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어 안전했지만, 홍수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많았다. 집에서 뉴스를 통해 본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집이 떠내려갔다고 말하던 한 사람은 행복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들의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끼는 능력은 나를 깊이 감동시켰다. 나는 그들에게서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감사와 긍정의 태도를 배웠다.


어학연수 기간 동안의 경험은 영어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았다. 우리는 새로운 문화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다양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법을 배웠다. 선생님들과 주고받은 대화 속에서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을 알게 되었고, 주말마다 함께한 봉사활동은 나를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이 비록 작더라도 그것에 감사하고 행복할 줄 아는 자세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언어를 넘어서는 소통의 방법을 배우고, 그들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심을 느끼면서 나 역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또한, 어학연수 중 만난 다른 연수생들과의 교류도 내게 큰 자극이 되었다. 각자 다양한 이유로 연수를 떠난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와 도전은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커리어 전환을 위해, 또 어떤 이는 가족의 미래를 위해 영어를 배우고자 했다. 그들과의 대화는 내가 가진 문제와 고민이 결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고,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얻은 유대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재미있는 점은 외국에서 영어를 공부하며 얻은 자신감과 성장의 경험은 나와 남편의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서로를 더욱 이해하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며 한 팀으로서의 강한 유대를 쌓았다.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실패했을 때도 서로를 위로하며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히 언어 능력을 키우는 것을 넘어 우리 삶 전체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어학연수를 마친 뒤, 우리의 다음 도전은 유학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금전적인 여유는 단 한 사람의 유학만을 허락했다. 전세금과 모든 재산을 걸어야만 가능했던 선택. 우리는 고민 끝에 내가 유학을 가는 길을 택했다. 어학연수 이후 내가 유학을 결정한 것은 단순히 또 하나의 도전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이룰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문이었다. 유학 준비 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영어라는 도구를 통해 얻게 된 자신감은 나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유학 시절에는 어학연수에서 배운 것처럼 또 다른 문화와 새로운 환경 속에서 배우고 적응해야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영어라는 도구는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표현하고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내가 그때 안정적인 직장에 안주하며 변화를 두려워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세상은 우리를 수없이 시험한다. 하지만 그 시험에 맞서 도전하고, 내가 스스로 포기했던 가능성을 하나씩 되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나를 진짜 나답게 만들어준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얻은 깨달음은 분명하다.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다." 영어든, 유학이든, 아니면 또 다른 도전이든.


우리 삶에는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들이 종종 나타난다. 계약직이라는 꼬리표와 영어라는 장벽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좌절감처럼, 이런 벽들은 종종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그 순간마다 나는 선택을 통해 한 걸음씩 나아갔고, 그 벽 너머에는 항상 새로운 기회와 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벽은 우리를 멈추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자신으로 성장하게 하기 위해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도 나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마주한 벽은 멈추라는 신호가 아니라, 성장하라는 초대장일지 모른다. 어학연수에서 영어라는 벽을 넘으며 느꼈던 깨달음과 유학이라는 또 다른 도전을 통해, 나는 이 진리를 직접 경험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벽을 넘을 때마다 새로운 가능성과 배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당신의 앞에 어떤 초대장이 있을까? 그리고 그 초대장 너머 또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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