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 혼자 미국 유학을 떠나다.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은 다르다."모피어스의 말처럼, 나는 길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을 직접 걷기 시작했을 때야 비로소 현실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계획 속에서는 모든 것이 논리적이고 준비된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현실 속에서 한 걸음을 내디디는 순간, 나는 거센 파도 앞에 선 것처럼 휘청거렸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용기를 요구했다.
꿈에 그리던 학교로 가기 전, 나는 끝없는 준비 속에 휩싸여 있었다. 수업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노트북 업그레이드부터 비자 신청, 몇 달간 지낼 짐을 싸는 것까지 해야 할 일들이 넘쳐났다. 특히 비용 문제는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합격 통지를 받은 1월부터 출국하는 6월까지 그냥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기에, 나는 단기로라도 일을 하기로 했다. 육아휴직 대체 인력으로 취업해 유학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면서 틈틈이 영어 공부도 병행했다.
미국으로 가는 항공권을 찾아보니 프로비던스는 한국에서 직항이 없는 작은 도시였다.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처럼 유명한 아트 스쿨이 많은 대도시들은 생활비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비쌌다. 프로비던스는 그런 점에서 이상적인 선택이었다. 뉴욕의 절반 수준인 렌트비는 나에게 실질적인 안도감을 주었다.
최대한 저렴한 비행기표를 찾기 위해 두 번의 경유를 거치는 여정을 선택했다. 그리고 드디어 출국하는 날, 나는 짐을 끌며 공항으로 향했다. 하지만 출국장이 가까워질수록 갑자기 모든 것이 두려워졌다. 이 많은 짐을 들고 두 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데, 낯선 곳에서 나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엇보다도 신혼인 남편과 떨어지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차 안에서 바라본 도시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서울에서의 마지막 장면이었고, 익숙한 것들과 작별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공항에 도착하고 출국장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쿵쾅거렸다. 두려움이 갑자기 현실이 되어 나를 덮쳐왔다.
"내가 과연 잘한 선택일까?"
심장이 마구 뛰었고,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갑자기 현실로 와닿자 숨이 막혔다. 수많은 날을 준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두려움이 밀려왔다. 공항의 인파 속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눈물이 차올라 앞이 보이지 않았고 캐리어 손잡이를 쥔 손이 떨렸다. 땅이 꺼지는 듯한 느낌이었고,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 그 소리가 귀까지 울렸다.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하는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익숙하지 않았다. 몇 달간의 준비 과정이 무색할 만큼, 갑자기 이 길이 너무 낯설고 무서워졌다. 내 뒤에 있는 현실과 앞에 펼쳐진 미지의 세상 사이에서 나는 망설였다. 마치 깊은 물속에 몸을 던져야 하지만, 숨이 막힐 것 같은 공포가 나를 사로잡는 듯했다. 내 뒤에는 익숙한 현실이 있었고, 앞에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남편의 얼굴을 보려 했지만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그러다 남편이 단호하게 말했다.
"신정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그의 목소리는 단단했지만, 그 속에는 나를 향한 애정과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나를 붙잡았다.
"잘 갔다 와. 도착하면 바로 전화해."
그 순간 그의 손길이 내 몸을 감싸며 따뜻함을 전했다. 그리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근데 생얼은 안 돼.!! 화장이라도 해야 누가 짐이라도 도와줄 거 아냐."
난 이 말이 우습기도 했지만, 나를 걱정하는 그의 방식임을 알기에 더욱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끝내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등을 돌렸다. 남편도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그의 어깨가 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외면한 채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면서도, 남편의 존재가 내 곁에서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뒤돌아보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앞으로만 앞만 보며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공항은 그때부터 우리에게 애틋하고도 가슴 아픈 장소가 되었다.
2013년 6월의 한여름, 미국의 작은 도시 프로비던스에 도착한 나는 캄캄한 밤하늘 아래 공항 택시를 타고 첫 일주일을 머물기로 한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포트폴리오를 함께 준비했던 친구의 서블렛(Sublet) 집이었지만,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차가운 현실이었다. 이불이 없었다. 그 친구 역시 짐이 거의 없는 상태였기에 나는 가져온 옷가지들을 덮고 낡은 마루 바닥에 몸을 뉘였다. 삐걱거리는 100년도 더 된 듯한 나무 바닥은 싸늘했고, 몸은 피곤했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이게 정말 내가 꿈꾸던 유학생활의 시작인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퉁퉁부은 눈에서 눈물이 다시 흘렀다. 유학이라는 단어는 겉으로 보기에 멋지고 화려해 보이지만, 현실은 그러한 기대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다. 공항에서부터 시작된 외로움과 두려움이 이제는 차가운 바닥 위에서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내 머릿속에 그려왔던 유학 생활은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도서관에서 커피를 마시며 공부하고,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자유롭게 토론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찬 바닥에 누워 몸을 웅크리고, 피곤하지만 불안감 때문에 잠조차 이루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작은 것 하나조차 나혼자 직접 해결해야 했다. 가구가 갖춰진 숙소는 꿈같은 일이었고, 따뜻한 식사 한 끼조차 간단하지 않았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것도, 영어로 주문을 하며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도 하나같이 신경 써야 할 일이었다. 특히 장을 보고 나서 항상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남편이 옆에 없으니 아픈 손과 팔을 툴툴 털어내며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서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구나. 꿈꿨던 이상과 마주한 현실의 간극이 너무 커서 원래 사용하던 에너지보다 더 사용하느라 첫 일주일은 원래보다도 더 피곤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완벽하게 준비했느냐가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것이었다.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나야 했다. 유학생활은 낭만이 아닌 생존이었고, 나는 그 첫 번째 도전에 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마음을 다잡았다. 첫 수업을 맞이하는 그 순간, 나는 조금씩 현실에 적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학년에는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있었다. 미국 각지를 비롯해 두바이, 베트남, 레바논, 터키,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온 동기들이 모였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학생은 단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왕족 공주였다. 그렇게 전 세계에서 모인 24명의 대학원생들은 첫 여름 학기를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점점 나만의 방법으로 이곳에 적응해 나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이곳에서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나를 짓누르던 불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졌고, 그 자리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유학은 공부를 하러 가는 것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도전하는 과정이었다. 처음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냉혹했고, 꿈꾸던 이상과의 간극은 너무도 컸다. 하지만 나는 점차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매일 작은 성취들이 쌓여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시간과 함께 불안은 희미해지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여정 속에서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