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이 다르다면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졸업하고 Job Offer 받기

by 신정원

출발선이 다르다면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나는 미국에서 졸업 후 취업을 해야 했고, 비자의 벽을 넘지 못한다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도 새로운 방법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결국 나를 뉴욕으로 이끌었다.


미국에서 정규 학교를 졸업하면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이라는 제도를 통해 1년간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1년이 지나면 H-1B 취업비자를 받아야만 미국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다. H-1B 비자는 전문직 취업비자로, 고용주가 외국인을 채용할 때 스폰서 역할을 해야 한다. 매년 한정된 수의 비자만 발급되며, 특히 일반 쿼터(65,000개)와 STEM 전공자를 위한 추가 쿼터(20,000개)로 나뉜다. 경쟁이 치열해 대부분의 지원자는 추첨 과정을 거쳐야 하며, 당첨되지 않으면 다시 도전해야 한다. 또한, 비자를 받았다 하더라도 3년 후 연장해야 하며, 장기적으로 미국에 체류하기 위해서는 영주권 신청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H-1B 비자는 외국인이 미국에서 커리어를 지속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그만큼 전략적 접근이 필요했다.


나는 졸업을 앞두고 고민이 많아졌다. 나 같은 외국인이 과연 미국에서 취업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미국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지원한다면 경쟁에서 밀릴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처음에는 미국 친구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취업을 시도했다. 나는 필사적이었다.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잡아야 했다. 건축/인테리어 설계 회사의 잡오프닝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보내고 인터뷰 회신을 기다렸다. 내가 가고 싶은 회사들을 쭉 리스트업했고, 약간 과장해서 100개쯤 되는 공고 리스트를 몽땅 지원했다. 졸업 전부터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에 거의 4-5개월 동안 이 과정을 반복했다. 매일 아침이면 이메일을 확인하며 한 줄기 희망을 찾았고, 저녁이면 새로운 공고를 찾아 또다시 지원했다. 마치 거대한 바다에서 낚싯줄을 던지는 기분이었다. 다음 좋은 기회에 지원해달라는 답장이 오거나 오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언젠가는 한 줄기의 빛이 올 거라고 믿으며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인터뷰까지도 가지 못하고 서류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어찌보면 자국민이 우선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나는 남들보다 더 눈에 띄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기존의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전략을 세우기로 했다. 무작정 지원하는 대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신생 떠오르는 건축 설계 회사를 타깃으로 삼았다. 건축 매거진을 검색해 ‘Rising Architects’라는 섹션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이곳에는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회사들이 소개되어 있었다. 이들은 업무량이 많아 빠르게 인력을 충원할 필요가 있었으며, 실제로 채용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심지어 매거진에 올라왔으니 클라이언트 제안은 더 많아질거라 생각했다.

나는 그들의 성장 속도를 기회로 삼기로 했다. 그냥 이력서를 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회사의 핵심 가치와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면밀히 분석한 뒤, 그에 맞춰 맞춤형 지원서를 작성했다. 내 이메일에는 기본적인 이력서를 넘어, 공간에 대한 나의 철학과 그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디자인 문제에 대한 나만의 관점을 담았다. 한 마디로, 이 회사들이 "나를 필요로 할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었다.


나는 신중하게 이메일을 작성하며, 내 경력과 공간에 대한 열정을 담은 스토리를 함께 녹여냈다. 형식적인 지원서가 아닌, 나의 강점과 회사가 나를 채용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맞춤형 이메일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포트폴리오를 첨부하고 정성을 다해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이제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운 전략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인지 시험해볼 차례였다. 답장이 올까?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며칠 후, 드디어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그 순간,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화면에 떠오른 낯선 이메일 주소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손끝이 떨렸고, 심지어 이메일을 열기 전에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설마?' 하는 마음과 '드디어!' 하는 기대감이 뒤섞였다. 몇 달 동안 남들과 똑같이 지원해서 번번이 실패했던 것이, 전략을 바꾸자 며칠 만에 성공을 한 것이다.


이메일을 보낸 곳은 ODA Architecture였다. 뉴욕 맨해튼 유니언 스퀘어 근처에 위치한 이 회사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설계로 유명한 공간 디자인 회사였다. ODA는 독창적인 디자인과 공간 활용으로 뉴욕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주목받고 있었으며, 특히 기존 도시 구조를 새롭게 해석하는 프로젝트로 명성이 높았다. 이들은 주거, 상업, 공공시설 등 다양한 건축 유형을 다루며, 현대적인 디자인과 기능성을 결합하는 데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oda2.jpg

나는 곧바로 면접 일정을 잡았다. 뉴욕과 브루클린을 중심으로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 회사에서 면접을 본다는 것 자체가 설레는 일이었다.


면접 당일,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몇 번이나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정리했고, 지하철 안에서도 머릿속으로 예상 질문을 떠올리며 연습했다. 회사 앞에 도착해서는 문을 열기 전까지 몇 초 동안 서 있었다. 이제 한 걸음만 내디디면,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펼쳐질 수도 있었다. 이번 인터뷰를 반드시 잘해야 했다. 만약 실패한다면, 또다시 어떻게 인터뷰 기회를 따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었다. 잘하자, 잘하자. 여기까지 온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반드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머리에 키가 작은 일본인 출신의 여성 디렉터와 그 잡지에서 본 대표 건축가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자리에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나는 내 소개를 했다. 한국에서 와서 실내건축을 공부했고, 열정 하나로 미국까지 와서 도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동안 한국과 미국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영어로 발표하는 것은 여전히 떨리는 일이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내 이야기를 전달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대표 건축가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나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꿈속에 있는 듯 얼떨떨했다. 눈앞의 두 사람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서야, 모든 것이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단 한 번의 면접으로 취업이 확정된 것이다. 나도 모르게 “정말요?”라고 되물었고, 두 사람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회사는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즉시 함께할 사람이 필요했고 나는 운이 좋게도 그 타이밍에 맞춰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이렇게 나는 뉴욕에서 첫 직장을 얻었다. 출근 첫날, 출근길 지하철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드디어 나도 찐 뉴요커가 되었네!’


그렇게 시작된 미국에서의 직장 생활은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시간이 되었다. 뉴욕이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일하는 자체가 영광이었고, 나는 그 속에서 매 순간 성장하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도전이 있었고, 매 순간이 배움이었다. 공간 디자인에 대한 나의 시각은 더욱 넓어졌고, 감각도 날카로워졌다.


특히 뉴욕 맨해튼으로 출퇴근하는 내 모습이 자랑스럽고 신기했다. 맨하탄 지하철에서 내려서 가장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손에 쥐고 눈앞에 펼쳐진 빌딩 숲을 바라볼 때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했다. 힘든 날도 많았지만, 출근길마다 '와, 내가 진짜 뉴욕에서 일하고 있네'라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oda.jpg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로 자리 잡기 위해 누구보다 열정을 불태웠다. 회의에서 내 의견을 자신 있게 제시했고,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실무 능력을 키웠다. 때로는 주어진 업무를 넘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팀에 기여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평범한 직장인을 넘어, 진정한 프로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 열정과 노력의 결과, 회사는 나를 위해 H-1B 취업 비자를 스폰서해 주기로 결정했다. 일반적인 연장이 아니라, 내가 회사에서 인정받았다는 의미였다. 이 도시는 꿈꾸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지만, 그 기회를 붙잡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 비자를 받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변호사를 선임해야 했고, 회사에서도 비용을 일부 부담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무사히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나의 기여도를 인정해 추가 인센티브까지 제공해 주었다. 그 순간, 나는 취업 이상의 의미로 진정한 프로로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회사의 일원이 아니라, 나의 실력과 노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미국에서 3년 동안 일을 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만약 그때 내가 다른 전략을 세우지 않았다면, 내가 맨하탄에서 일하며 배웠던 모든 경험들을 하지 못했을 수 있다.

취업을 ‘주차장’에 비유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리가 나야 주차할 수 있는 것처럼,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리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외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과 같은 방법을 따라가기보다, 나만의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도 나는 종종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용기를 내어 메일을 보냈던 순간, 긴장 속에서 면접을 보았던 순간, 그리고 ‘내일부터 출근하세요’라는 말을 들었던 그 짜릿한 순간까지.

미국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두려움을 넘어서 도전하는 용기다.


그리고 그 용기가 나를 뉴요커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당신도 도전할 수 있다. 출발선이 다를지라도, 노력과 전략이 있다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기회는 찾는 사람이 아닌, 만들어 가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당신의 꿈도 그렇게 현실이 될 것이다.

펜트하우스.jpg

ODA에서 개발한 로우 맨하탄에 있는 100억짜리 하이앤드 콘도 아파트 최상층 펜트하우스에서 폼잡고 사진찍어봤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유학생활에서의 집은 가장 우선 순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