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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e Jan 17. 2023

과거의 혼례 [오상순 님 혼례이야기]

기북일상, 두렁마을 이야기


과거에는 연애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다처녀가 바깥출입을 하고 연애하는 것을 바람이라 여겼던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다그래서 당시에는 중매와 집안 어른들끼리 짝지어주는 정략결혼이 많았다


오상순 할머니는 ‘후리방’에서 장녀로 태어났다당시에는 대부분 20~21살에 혼인을 하는 것이 대부분 이었지만할머니는 고집을 부려 24살까지 시집을 가지 않으셨다그러던 어느 날할머니는 한들(대곡)동네에 옷 장수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친구들과 함께 옷구경을 가게 되었다그곳에서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되는데그 할머니가 바로 오상순 할머니의 시댁 어른이셨다시댁 할머니는 오상순 할머니를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드셨다그러던 중시댁 할머니께서 오 할머니의 집으로 찾아오셨다그러면서 하시던 말씀이 “우리 집에 좋은 총각이 있는데니 해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며칠 뒤오 할머니의 어머니께서 한들에 옷 구경을 가자며 오 할머니를 꾀었다할머니는 의아했지만옷 구경을 간다고 하니 기분이 좋아서 잠자코 따라나섰다그런데 갑자기 ‘한들’의 이장님 댁으로 들어가니옷 장수는 없고 청년 한 명과 어른들 몇 명이 있으셨다오 할머니와 청년이 만나자 어른들은 둘이서 얘기하라며 자리를 피했고, 할머니는 '이제는 피할 수 없겠구나'하시며 결혼을 다짐하셨다그렇게 두 집안은 혼약하게 되었고 혼례를 준비했다

함을 지고 오던 모습

혼례를 준비하면서 할머니는 동네의 혼례복을 사용하지 않고기계의 한복집에서 한복을 맞춰 입으셨다 그리고 패물은 반지와 목걸이시계를 하셨다고 한다함은 신랑의 친구들이 메고 ‘후리방’에서 ‘한들’ 까지 왔다고 하셨다일반적으로 함은 혼례 날 저녁에 가져오는 경우가 많지만혼례도 일종의 행사였기 때문에 당일 오전에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그리고 부주로는 음식이 제일 많이 들어왔다현대에는 거의 돈으로 내지만옛날에는 식혜나 유과떡을 많이 받았다가끔은 그릇이나 살아있는 닭밥통이불(2000, 3000등이 들어오기도 했다

담 넘어 혼례식을 구경하는 마을 사람들

혼례 당일 날잔칫날이다 보니 사람은 많고 마당은 좁은 경우가 많았다그래서 마당 안에는 동네의 어르신들과 여자들만 들어가고남자들은 담 넘어서 혼례식을 구경하였다혼례식이 시작되면신부는 방 안에서 치장을 하고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그리고 신랑은 총각 친구들이 태워주는 목마를 타고 혼례가 열리는 마당으로 들어왔다신랑이 입장하고 나면다음으로 신부가 입장하는데신부의 순수함을 나타내기 위해 업고 들어왔다고 한다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을 목마에 태워 입장하는 모습

오상순 할머니는 신랑과 키 차이가 꽤 났는데그 모습을 본 오 할머니의 남동생이 처음에는 대야를 들고 할머니의 발밑으로 쓱 밀어주었다그러나할머니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쓱 밀었다고 한다동생은 포기하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가 나무 베개를 찾아서 다시 오 할머니의 발밑으로 밀어주었다튼튼한 나무 베개가 마음에 든 할머니는 그제야 베개를 발판 삼아 올라섰다그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은 깔깔 웃었고할머니도 웃음이 터져 함박웃음을 지었다

흑백 혼례사진 (신랑: 손익달님, 신부: 오상순님)

혼례식 점심은 주로 국수를 많이 먹었다잔치에서 국수를 먹는 이유는 오래오래 백년해로하라는 뜻이 다그래서 추운 겨울(1975년 1월 19)에 혼인하신 오상순 할머니는 손님들께 칼국수를 대접하였다

당시에는 기계가 없어서 손으로 직접 다 밀어 칼국수를 만들었다


나는 음식으로 낸 부주가 ‘정이 있는 부주’라고 생각한다현대에는 돈으로 부주를 대신하지만과거에 는 잔치 주인공들을 생각하는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부주를 준비했다그리고 다 같이 모여 한 밥상에서 부주로 낸 음식들을 나눠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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