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북일상, 두렁마을 이야기
다랭이 논은 계단식 논으로 개간하기 전, 형성된 논으로 각각의 모양이 다양하다는 특징이 있다. 기북면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풍경이 일직선으로 난 도로와 양 옆으로 반듯하게 펼쳐진 계단식 논들이 있다. 원래는 모두 다랭이 논처럼 개간되지 않은 논이었지만, 농기계의 발달과 농촌의 현대화에 맞춰 대부분의 논들이 계단식 논으로 개간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북면 율산 2리의 거산마을 에는 아직 다랭이 논들이 있다. 이 논들은 마을을 지나쳐 산기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개간하는 데 어려워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계단식 논은 반듯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모습이 모두 같지만, 다랭이 논은 지형을 따라 논을 만들었기 때문에 모양이 모두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거산마을에서 구불거리는 농로를 따라 산으로 올라가다 보면, 다랭이 논이 층층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다랭이 논 주변으로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산이 꼭 벼가 안전하게 자라도록 든든하게 지켜주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다랭이논 주변으로 농로가 잘 되어있어서 그 코스로 자주 산책을 나간다. 늘 똑같은 풍경인 것처 럼 보여도 갈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계절의 변화를 체감한다. 봄에는 추운 겨울을 나고 모내기 준비가 한창이고 논둑에도 점점 초록으로 물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름에는 백로와 왜가리가 논 구석구석 을 누비며 벌레도 잡아먹고 논에는 푸르른 벼들이 나란히 줄지어 자라고 있다. 논둑에는 이름 모를 꽃 들이 가득 피어 눈을 즐겁게 해준다. 가을이 되면, 푸르던 벼들이 점점 고개를 숙이며 황금 논으로 바뀐다. 산은 단풍으로 붉게 물들고 논은 노랗게 물든 것이 정말 장관이다. 겨울이 되면, 다음 해의 농사를 준비하기 위해 논의 휴식기가 찾아온다. 그러다 무척 추운 날이 찾아오면 논에 물을 받아 간이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스케이트를 타기도 한다.
가끔 달도 없고 구름도 없는 여름 밤이면, 나는 카메라를 들고 다랭이 논으로 향한다. 예전에는 몰랐었는데, 논과 밭 주변에는 가로등을 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로등의 불빛으로 인해 작물들이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랭이 논 주변에도 가로등이 없다. 그래서 별도 무척 잘 보일 뿐만 아니라 은하수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은하수를 보니, 정말 우리는 우주의 작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 척이나 넓고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기북으로 이사 와 서 정말 다행이야. 이걸 못 봤다면 인생에서 정말 큰 손해였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