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북일상, 두렁마을
낡은 슬레이트 지붕, 여기저기 갈라져 있는 시멘트 벽. 그 안에는 보물이 잠들어 있다.
시골집의 창고는 보물 창고 같다. 이곳에서 지금 당장 쓸 일은 없지만 버리기 아까운 것들은 모두 창고 안으로 들어간다. 콩이나 보리를 탈곡할 때 쓰던 탈곡기부터 옛날에 떡 찧을 때 쓰던 절구도 있고, 밭 갈던 쟁기, 잔치 때마다 돗자리 대신 쓰던 멍석, 계산기 대신 사용했던 주판, 카메라가 귀하던 시절 찍 어 놓은 흑백 사진앨범 등 옛날에 사용했던 물건들을 가득 쌓아두었다. 이처럼 창고 안에서는 상상도 못 한 물건들이 나올 때가 있다.
호기심이 많던 어릴 적, 나는 할머니 댁에 가면 늘 창고 안을 탐험했다. 창고는 내게 또래 친구가 없던 시골에서 재밌는 놀이거리였다. 먼지 가득 쌓인 창고 안을 이리저리 뒤지며 신기한 물건을 찾아내는 것 은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것 같았다. 어렸던 나는 창고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창고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얼굴과 옷은 먼지투성이가 되기도 했다.
어릴 때 가졌던 기억의 영향은 생각보다 강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시골집의 낡은 창고를 보면 그 안에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 호기심이 생기곤 한다. 요즘은 옛날 집을 허물고 새로 집을 짓는 가구들이 많아졌다. 집을 새로 지으면서 옆에 있던 창고도 같이 허물어버리고 창고 안 물건들을 버리는 경우가 많다.
겉보기에 지저분하고 낡은 물건들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물건들에게도 전성기가 있었다. 농기계가 기계화되지 않았던 시절에 쟁기는 밭을 갈 수 있는 필수 농기계였다. 그리고 지금은 휴대폰에 수천 장의 사진들을 저장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인화한 사진 한 장이 무척 귀했다. 군에 간 아들, 시집간 딸 사진을 겨우 한 장 인화하고 벽에 걸어놓고 바라보던 부모님의 그리운 마음이 흑백사진 안에 들어있다. 이처럼 그 물건들에게는 소중했던 기억들이 잠들어 있다.
물론,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농촌의 거주 형태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작정 낡고 쓰지 않는다고 버리는 것은 그 물건들이 가진 기억들이 무척 아깝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쓸모없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이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누군가에겐 그리운 추억이 된다.
이처럼 농촌에서 쓸모없는 것은 없다. 무엇이든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되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반짝반짝 빛이 난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내 자리가 없는 것 같아 방 황할지라도 어디든 꼭 필요한 곳이 있고, 빛날 수 있는 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