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밑창에 핀 꽃

자국마다 무늬가 있었다

by 박다올

사람들이 자주 걷는 길엔 물이 닿지 않아

아니, 닿았었지만 말라붙은 지 오래지


“거 봐, 먼지 끼면 오히려 덜 미끄럽지 않아?”


누군가 세월을 먹은 치아 사이로 툭 내뱉고

신문지는 깻잎처럼 접혀 맨홀 위에 앉아 있었다


낮은 골목, 화단이 있어도 식물은 없다

대신 모서리를 돌 때마다 은색 배달통이 먼저 다녀간다

풀 한 포기도 제때 피지 못하는 곳엔

속도가 먼저 뿌리를 내린다


물푸레나무는 거기엔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바퀴자국 사이에 끼어 뿌리를 내렸다


“나무가 왜 거기서 나와?”


누군가 웃으며 지나갔고

기억은 그 위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비둘기와 고양이는 한 평 남짓한 그늘을

다투지 않고 나눠 쓴다

햇빛이 삼킨 건 형체고

남은 건 그림자야, 늘 그렇듯이


쇠창살 사이 옥수수 수염이 바람에 실려 흔들리고

그 아래 검은 봉지 하나

생선 비늘 냄새를 마지막까지 잡고 있다


“오늘이 우리 애 생일이에요, 이 고기 좀 싸게 안 될까요?”

그 말은 무게가 없어

검은 봉지보다 더 가벼웠다


도로 끝 풀들은 잎을 오므리고

건물 뒤 담쟁이는 자기 몸을 감아 다시 풀어낸다

그 누구도 보지 않는 방향에서

피고 지는 일이 반복된다

땅은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

단지 발자국만 쌓일 뿐이다


잔열에도 눌어붙은 말들이 숨을 쉬고 있었다

욕도 사과도 아닌 그저 오늘의 말들이

고꾸라지는 일몰과 함께 뿌옇게 흩어진다


차창 너머로 “엄마!” 하는 소리가

바람보다 먼저 골목을 채우고

누군가는 어깨에 흘린 땀만큼

삶을 견디고 있다


도시는 익는다

볕은 부끄럼을 모른 채 쏟아지고

개화는 화단이 아니라

구두 밑창에 묻어 따라온다


햇살보다 먼저 골목을 뛰는 발소리

닳아진 바닥을 통과하며

작은 발자국들이 도시의 새 옷을 짓는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틈에서

꽃 한 송이가 말도 없이 피었다


“이런 데서도 꽃이 피는구나”

그 말을 남긴 이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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