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그 일을 하는지 아십니까?

by 골디

공직에 대한 꿈은 외고 입학 시점에 아버지의 뜻밖의 실직에서 시작했다. 당시 대기업에 다니시던 아버지는 등록금이 비싼 특목고에 입학하겠다는 내 결심이 혹시나 당신의 실직에 영향을 받을까 봐 3개월 동안 구립도서관으로 출퇴근하고 계셨다. 입학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17살의 나는 아버지에 대한 대기업의 해고 행위를 토사구팽으로 여겼던 것 같다. 아버지가 젊었을 때 받으셨다는 ‘귀하의 노력’을 치하하는 다양한 상패를 보며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 사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결국은 언젠가 내가 늙어 젊은 친구들에 비해 이용 가치가 떨어질 때쯤 나를 자르는 것, 결국은 가장 높은 곳 누군가의 지갑을 두껍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에 비해 공직은 내가 하는 모든 업무가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생이 되어 행정학과에 입학하여 행정학을 공부하면서 이 꿈은 더 확고해졌다. 열심히 고안한 정책이 전국에 시행되어 국가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상상을 하면 가슴이 뛰었다. 아무리 작은 디테일이더라도 그 정책이 국민들의 일상에 미칠 영향력을 고려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능을 발휘하여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렇게 공익 실현에 누구보다 기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고위공무원이 되는 꿈을 포기하는 일은 진심이었던 만큼 아프고 아팠다. 고시촌에서 방을 빼고 복학한 첫 학기에는 불면증을 심하게 겪어 매일 밤새도록 울면서 잠에 들 수 있기를 빌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에 들곤 했다. 마음을 조금 추스리고 그해 연말쯤 7, 9급 공무원 준비로 방향을 튼 나는 투박한 고시용 서적들에 비해 훨씬 커진 문제집 글씨와 알록달록한 일러스트를 보며 어느 날은 독서실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3년 동안 준비했던 거시적인 사회문제 해결을 묻던 문제와 달리 단순히 선지의 O, X만 묻는 문제들을 보고 자기가 앞으로 하게 될 일이 어떤 것인지 매 순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할 일은 단순하고 정확한 집행이구나. 문제 해결은 내가 할 일이 아니구나. 나에게 그런 권한은 없겠구나.’ 예상했던 대로 입사한 후 나는 꿈꾸던 일에 비해 훨씬 낮은 책임과 좁은 업무 분야를 맡게 되었다.


나는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닌 공익 실현에 기여하고 싶다는 로망 때문에 공무원이 되고자 했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입직한 이후 내가 하는 일의 본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던 시기에 한 서울시 공무원과 대부업체 합동점검을 나가게 되었고 이날의 경험은 나에게 공무원으로서의 직업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내가 하는 업무는 자치구의 대부업체를 등록하고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 일환으로 일 년에 한두 번씩 서울시와 합동점검을 다녔다. 미리 방문을 고지한 업체의 소재지를 서울시 대부업 담당자와 직접 방문하여 등록증, 대부조건표 등을 제대로 게시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기타 법률 사항들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저는 선생님과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함께 현장점검을 나간 서울시 공무원은 단호했다. 미리 연락하고 방문한 업체였지만 대표는 개인 사정이 생겼다며 사업장에 없었다. 대신 직원도 아닌, 자신이 건물 관리자이자 관계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업체를 대변하여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는 며칠 전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던 자료에 대해 전달받은 것이 없다며 잡아떼며, 되려 우리의 현장점검 태도를 지적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이렇게 강압적인 조사를 하냐며 사근사근하지 않은 공무원의 자세에 대해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자신이 알고 있는 ‘높은 사람’에게 연락하겠다며 휴대폰을 꺼내 통화를 하더니 우리의 이름을 전달하기도 했다.


예상보다 심각한 반발에 잔뜩 당황한 나와 달리 서울시 담당자는 엄청난 카리스마로 업체와의 기싸움에서 지지 않았다. 정당하게 법률에 따라 필요한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며 절차를 준수하고 있음을 침착하게 설명했다. 결국 요구했던 자료를 제대로 구비하고 대표님이 확실히 계실 때 재방문하는 것으로 날짜를 정해 약속한 뒤 우리는 업체를 떠나게 되었다.


현장점검을 함께 다니며 관찰해본 결과, 이 서울시 담당자는 기본적으로 관련 법령을 씹어먹고 있을뿐더러 최대한 협조하기 싫어하는 업체들을 설득하는 탁월한 노하우가 있었다. 때로는 마치 수사를 하는 것처럼 강하게 압박하기도 하고 또 나중에는 부드럽게 어르고 타이르기도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통해 금융이용자 보호라는 법의 취지를 업체에게 이해시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추궁과 설득과 협상의 시간.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그분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자녀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이 자기 엄마가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엄마를 좀 더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을 텐데.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싫은 소리 못하고 상대방 달래기에 급급해지곤 하는 내 모습이 반성되는 순간이었다.

행정기관의 역할은 관련법의 취지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법대로 집행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 간의 마찰은 불가피하고 나는 그 싸움에서 지면 안 되는 사람이다. 서울시 담당자와 함께 현장점검을 다니면서 이런 기 빨리는 상황을 꿋꿋하게 버텨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 과정은 서로 싸우자는 것이 아니다. 결국 사회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제대로 협조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다 같이 잘살아보자고. 더 건강하고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 화도 내고 싸워도 보고 협상도 해야 한다. 가끔씩은 악역을 자처해야 한다. 혹시 나는 그냥 좋은 사람인 척만 하려고 악역이 껄끄러워 도망친 적은 없었는지 스스로 반성해보게 되었다.


과연 공무원이 하는 일의 본질이란 뭘까? 나는 기본적으로 공무원이 하는 일은 그것이 어떤 분야이든 간에 “교통정리”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각 분야에서 생기는 다양한 인간관계, 그리고 그들 간에 일어나는 현상과 갈등을 관리하고 기록하는 일. 이 세상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소위 말하는 ‘맨날 밥 먹고 하는 일’이 이 나라 이 사회 사람들의 실생활과 이익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또래의 젊은 동료들이 업무에 대해 가지고 있는 회의감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자긍심을 가지고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요새 많은 MZ세대 공무원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있다는 뉴스 보도가 연일 올라온다. 실제로도 하위직 젊은 직원이 면직한다는 공문을 내부에서도 꽤나 자주 볼 수 있다. 적은 급여나 경직된 조직문화와 같은 비교적 가시적인 문제들도 많지만, 업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 또한 커다란 원인일 것이라 생각이 든다.


자신이 “왜” 그 일을 하는지, 왜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자신이 본질적으로 무슨 일을 왜 하는지 신경 쓰지 못한 채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조차도 여유가 없을 땐 그런 것들을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현실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더라도 이 일을 왜 하는 건지만 안다면, 어떻게 할지, 무엇을 할지, 누구와 할지 등등 이후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가다 보면 언젠가 가장 목표로 했던 삶에 도달하리라 생각한다. 어디론가 향해 가는 길, 그 과정 자체가 삶이고, 사랑하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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