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매력 있어요

ㅡ와이셔츠에 피어난 해바라기

by 매력덩

KTX 승무원이던 시절의 일이다.

경부선 노선을 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던, 평일 오후 두 시쯤이었다.


한산한 열차 안.

그날은 2호실에서 특실 서비스를 맡았다.

KTX의 장점이라면 단연, 덜컥거림 없이 철로 위를 미끄러지듯 달린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전역을 지나 동대구로 향하던 중, 이유를 알 수 없는 속도 저하가 있었다.


음료 서비스를 하던 중이었다.

순간 균형이 흐트러졌고, 오렌지 주스가 한 승객의 흰 와이셔츠 위로 쏟아졌다.


띠로리

오 마이 갓.


“어르신… 어머, 사장님… 아니,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 쏟아져 나왔다.

호되게 야단을 맞을 거라는 생각에 얼굴을 들지 못했다.

물티슈며 티슈며 손에 집히는 대로 꺼내 요란하게 닦다가, 이번에는 그분의 왼쪽 신발을 꾹 밟고 말았다.


, 씨......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알라신, 세상에 계신 모든 신들께서는 저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한 번만 살려주세요.'

큰소리 하나쯤은 터져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중년의 남자분이었다.

인상부터 편안하고, 젠틀해 보이는 분.

그분은 노랗게 번진 셔츠를 손으로 툭툭 털더니

씨익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덕분에 옷에 예쁜 해바라기꽃이 생겼네요.”


와… 이 고급. 뭐지,’

어떤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망치로 머리 한대를 띵- 하고 맞은 것 같았다.

그 여유와 유머, 그 태도가 너무나도 품격 있어서..

보통이라면 참고 자시고 할거 없이 짜증이 먼저 나오는 게 세상의 법칙 아닌가.

적어도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은 그 정도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세탁비를 꼭 드리겠습니다.”


거듭 사과했지만, 그분은 오히려

내 유니폼에 주스가 튀지는 않았는지부터 살폈다.

여분의 와이셔츠가 있다며 괜찮다 했고,

세탁비는 끝내 받지 않으셨다.


그 순간, 나는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우아한 사람을 살면서 실제로 마주친 적이 있었던가.

드라마 속 주인공도, 설정된 AI 캐릭터도 아닌데

예상치 못한 불편 앞에서 이토록 부드럽고 인자할 수 있다니.


그날 이후, 사람을 보는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진짜 멋짐은 말쑥한 외모나 직함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태도, 여유, 그리고 유머 속에서 스며 나온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런 매력은

한순간의 꾸밈이나 연기가 아니라

오랜 시간 자신이 살아온 삶의 태도,

인생을 대하는 방향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해바라기 꽃처럼 환한 미소를 가지신 그 분은

어디에 계시든,

그날 열차 안에서 보여주셨던 그 품격으로

지금도 아주 멋진 노년의 시간을

조용히 살아가고 계시지 않을까.


나는 그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하나의 분명한 답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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