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삶을 붙잡는 태도
인생을 바꾼 순간은 늘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장면 하나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바로 '기록하는 사람'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나는 관람객들에게 청와대 내부(녹지원, 상춘재, 구 본관 터, 본관, 영빈관)를 소개하는 일을 했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자연스럽게 사람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신청자 명단을 보며 그날 만날 사람들을 미리 그려보곤 했다.
‘오늘은 해병대 ○기 분들이 오시는구나.
해병대식 인사로 시작하는 게 좋겠군.’
‘어르신 칠순 기념 가족 방문이네.
먼저 축하 인사를 드려볼까.’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늘 작은 준비가 필요했다.
그 준비가 쌓일수록, 일은 더 재미있어졌다.
겨울 한복판의 어느 날이었다.
유난히 추웠던 날, 나는 녹지원 앞에 서서 첫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산에서 온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었다.
수학여행을 온 모양이었다.
멀리서 보니 대열을 맞췄다 흐트러졌다를 반복하며
시끌벅적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서울 구경도 처음일 텐데, 청와대라니.
아이들 눈에는 세상이 다 새로워 보였을 것이다.
나는 부산 사투리로 인사를 건넸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환영 인사를 했다.
녹지원 앞에는 커다란 반송나무가 있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켜온 나무다.
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맨 앞줄에서 유독 반짝이는 눈빛이 보였다.
잠자리 안경을 쓴 한 여학생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내 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열심히 무언가를 바쁘게 적고 있었다.
‘기록하는구나.’
설명을 이어가면서도
자꾸만 그 아이에게 시선이 갔다.
학교 다닐 때를 떠올려보면
공부 잘하던 아이들의 공통점이 늘 그거였다.
잘 듣고, 잘 적는 것.
기록은 기억을 붙잡아두는 일이다.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태도다.
다음 장소인 구 본관 터로 이동했을 때는
글씨를 적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자리를 그림으로 남기고 있었다.
신기하고, 이상했다.
내가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가르칠 만큼 깊은 내공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아이 앞에 서 있는 나는 분명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살면서 내 말을 저렇게 집중해서 들어주고,
자기 방식으로 받아 적어주는 사람을 얼마나 만나게 될까.
그 눈빛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지금 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있구나.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중요한 사람이구나’
설명하기 어려운 자기중요감이 올라왔다.
괜히 어깨가 펴지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더 책임을 느끼게 됐다.
아주 가끔, 정말 드물게
그런 사람이 내 앞에 서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일이 아니라 의미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이를 떠나 기록하는 사람은 멋있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그 자체로 단단해 보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큰일이 아니어도, 스쳐 지나갈 법한 장면이라도
붙잡아두듯 적는다.
그 여학생이 가르쳐준 건 기록하는 기술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