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나는 유난히 인정받는 것이 좋았다.
지금도, 그때도 우리 집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다. 일손이 부족한 날이면 학교 숙제보다 농사일이 먼저였다. 생존과 직결된 일이었으니까.
고추를 따고, 땅콩을 심고, 잡초를 뽑고, 비닐을 벗겼다.
나이가 어리든, 숙제가 있든 없든 일손이 필요하면 아빠는 우리 삼 남매를 불렀고, 우리는 군말 없이 나가야 했다. 하루치 일을 끝내는 것이 곧 ‘밥값’이라 여겼다.
그게 싫어서 다짐한 적도 있다.
“나는 꼭 성공해서, 커서는 절대 농사일 안 할 거야.”
아빠는 삼 남매에게 각기 다른 역할을 부여했다.
천성이 느긋한 오빠는 가장 많이 구박을 받았고, 언니는 성실했지만 농사일보다는 집안일에 특화되어 주로 새참을 맡았다.
막내였던 나는 몸이 가볍고 날래서 심부름을 도맡았다. 시키는 건 빠릿빠릿하게 해냈고, 그만큼 칭찬도 가장 많이 받았다. 아빠는 나를 유난히 귀여워하셨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나도 슬슬 요령을 부리기 시작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는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일하러 온 어른들 앞에서 말했다.
“우리 땡땡이는 아빠 일을 정말 잘 도와요. 인정도 많고, 얼마나 착한지 몰라요.”
그 말 한마디면 나는 다시 도망칠 수 없었다.
칭찬을 더 받고 싶어서,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움직였다.
소처럼 성실하고, 다람쥐처럼 날쌘 무언가가 있다면 딱 그랬을 것이다.
너무 힘들 때면 이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오늘 안에는 끝날 거야. 밤새는 건 아니잖아.
일이 끝나서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끝날 거라는 희망으로 하루를 버텼다.
그런 내가 직장에 와서 달라질 리 없었다.
더 인정받고 싶어서, 더 잘 보이고 싶어서 내 영혼을 갈아 넣었다.
불합리해도, 보상이 없어도, 누구에게도 일을 미루지 않았다. 혼자 다 해내는 게 인정받는 길이라 믿었다.
사실 나는 영리한 사람이 아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티를 내고, 효율적으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을 보며 늘 부러워했다.
나는 그저 무식하게 밤을 새우고, 남이 안 볼 때까지 일해서 겨우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실력보다 과한 기대를 받았고, 언젠가 밑천이 드러날까 늘 불안했다.
남의 기대에 맞추느라, 정작 나는 사라졌다.
미친 듯이 애썼지만 돌아오는 건 없었다.
쓰임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했지만, 그 선택이 늘 나를 지켜주지는 않았다.
정작 중요한 순간, 내가 기대했던 방식으로 세상은 움직여주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나는 크게 흔들렸다.
버림받았다는 느낌, 배신감 같은 감정이 밀려왔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그건 누군가의 잘못이라기보다, 인정으로 나를 증명하려 했던 나의 방식이 더 이상 나를 보호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세상의 이치라는 걸 그때서야 배웠다.
어릴 때는 몰랐다.
내가 이렇게까지 인정에 목마른 아이라는 걸. 지금도 내 안에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가 있다.
알아차렸는데도 잘 멈춰지지 않고, 혼자 속상해하고, 혼자 아파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왜 내가 힘든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그래서 예전보다 조금은 편안해졌다.
속상할 때마다 마음을 다그치기보다, “그래, 많이 애썼구나” 하고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주기로 했다.
이제는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준다.
나와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느낌.
그걸로 지금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