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권이 넓어진 것뿐이다

도파민 과다를 우려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한 가지 시선

by 포롱이

현대는 모든 것이 넘쳐난다.

정보도, 물질도, 선택지도 많다. 이것들을 모두 따라가려다 보면 피로해지고,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선택 과잉’이나 ‘도파민 중독’ 같은 말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달라진 것은 선택의 양이지 선택의 의무는 아니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과거의 인간은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좁았다. 금전, 거리, 신분 같은 조건이 삶의 방향을 대부분 결정했다. 많은 경우,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길을 따르는 것이 삶의 방식이었다.


반면 지금은 선택지가 지나칠 정도로 많다. 이 풍요로움이 부담으로 느껴질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을 다 누려야 할 이유는 없다. 누구도 그렇게 요구하지 않는다.


시간과 에너지는 여전히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그 안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만 골라 취하면 된다. 나머지를 내려놓는 일까지 포함해서, 그것이 선택이다. 선택권이 많아졌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할 환경이 조성되었을 뿐이다.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상태가 아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포기할지를 스스로 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성립한다. 그 과정이 번거롭다고 해서 손을 놓아버리면, 자유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밀어내는 셈이 된다.


국가에서 선거권을 행사하는 일도 같은 맥락에 있다. 투표하지 않아도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공동체의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수많은 세대가 투쟁 끝에 쟁취한 결과다. 익숙해진 ‘당연함’이 얼마나 값비싼 것인지는 이러한 지점에서 다시 환기된다.


초심은 개인의 삶에만 필요한 개념이 아니다.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가겠다는 태도, 그 자체가 인류가 반복해서 지켜온 초심에 가깝다. 결국 달라진 것은 세상이 아니라, 선택의 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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