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레시피 노트 4

요리를 하다 마주한 것들

by 담으리

미역국

생일이 됐다.

서른두 살. 생일 아침에 혼자 눈을 떴다.

예년 같으면 새벽부터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낳아줘서 고맙다, 아이고 어른이 됐네.' 매년 같은 말을 했다.

나는 매년 '알았어, 엄마'라고 했다. 별것 아닌 것처럼.

그 전화가 얼마나 당연했는지. 당연한 것들은 없어지기 전까지 당연한 것인 줄 모른다.

올해는 전화가 없었다.


핸드폰이 조용했다.

친구들 메시지가 몇 개 왔다.

남자친구도 카카오톡을 보냈다.

감사했다.


하지만 새벽 여섯 시의 전화는 없었다.

그 특정한 시각에, 그 특정한 목소리로 오는 전화는 이제 없었다.

나는 한참 천장을 봤다.

생일이 이렇게 조용한 날인지 몰랐다.

원래 이런 날이었는데, 엄마가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없어지고 나서야 엄마가 채워주던 것들의 크기를 알게 됐다.


일어나서 노트를 펼쳤다. 미역국 페이지를 찾았다.


미역국 미역은 충분히 불릴 것.

조급하면 질겨짐.

소고기는 참기름에 먼저 볶는다.

냄새가 다르다.

물 넉넉히, 간은 국간장으로.

소금 쓰면 맛이 얕다.

끓이다가 거품 걷어낼 것.

이거 안 하면 국물이 탁해진다.

※ 이 미역국은 내가 처음 태어난 날 우리 외할머니가 끓여주신 것.


나도 그날부터 배웠다.

혜원이 태어나던 날 새벽에 처음 끓임.

많이 떨렸다.

맛은 있었는지 모르겠다.

※ 혜원이 생일마다 꼭 끓임. 앞으로도 끓일 것.


앞으로도 끓일 것.

그 문장이 제일 힘들었다.

앞으로도 끓일 것,

이라고 적어뒀는데. 앞으로가 없어졌다.

노트는 여기 있는데, 그 손이 없었다.

앞으로도 해주겠다는 마음이 여기 남아 있는데, 이제 그 마음을 받을 수 없었다.


혜원이 태어나던 날 새벽에 처음 끓임. 많이 떨렸다.

엄마가 나를 낳고 처음 미역국을 끓이던 날.

많이 떨렸다고 했다.


나를 갓 낳은 몸으로, 처음 아이를 가진 몸으로, 엄마가 된 첫날 새벽에.

외할머니한테 배운 대로 미역을 불리고, 소고기를 볶고, 물을 부었을 것이다. 맛은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끓였다. 나를 위해서.


그 장면이 그려졌다.

본 적 없는 장면인데, 선명하게 그려졌다.

산후 병실의 새벽, 집으로 돌아온 첫날, 떨리는 손으로 미역을 물에 넣는 스물다섯의 엄마.


나는 그날 처음으로 주저앉아서 오래 울었다.

미역을 불리다가.

수돗물 소리와 함께. 한참을. 울다가 미역이 다 불었는지 확인하고, 또 울었다.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보 같아도 괜찮았다.


그래도 끓였다.

엄마가 혼자 끓이던 것을, 오늘은 내가 혼자 끓였다.

소고기를 참기름에 볶았다.

냄새가 달랐다.

노트에 쓰인 것처럼, 냄새가 정말 달랐다. 볶지 않고 그냥 넣었을 때랑 달랐다.


국간장으로 간을 맞췄다.

거품을 걷어냈다.

국물이 맑아졌다.


밥을 차려서 혼자 먹었다.

생일 미역국.


처음으로 내가 만든.


맛이 어떤지 잘 몰랐다.

뭔가 다른 게 계속 느껴져서.

그냥 다 먹었다. 먹으면서 엄마 생각을 했다.

나를 낳던 날 새벽의 엄마를. 매년 이걸 끓이면서 뭘 생각했을지를.


다 먹고 나서 핸드폰을 들었다.

엄마한테 전화를 누를 뻔했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잠깐 그 손을 봤다. 내려놨다.


그 손이, 엄마 손을 조금 닮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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