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하다 마주한 것들
요리를 따라 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었다.
엄마는 완벽주의자가 아니었다.
레시피마다 '처음엔 실패했다'거나 '몇 번 해보고 고쳤다'는 메모가 있었다.
동태찌개에는 '국물이 자꾸 탁해져서 세 번 실패.
이유를 찾다 보니 불을 너무 세게 했던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시금치나물에는
'데치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
오래 하면 색이 죽는다. 이걸 알기까지 오 년 걸림'
이라는 메모가 있었다.
오 년. 나물 하나 제대로 하는 데 오 년이 걸렸다고 적어뒀다.
나는 그 나물을 그냥 당연하게 먹었다.
색이 곱고 간이 딱 맞는 나물을.
오 년의 시도가 담긴 나물을.
엄마가 매번 시금치를 데치면서 시간을 재고, 색을 확인하고, 조금씩 조정하던 것을.
나는 그냥 먹었다.
김치전 레시피에는 작은 낙서가 있었다.
레시피 아래쪽에 다른 색 펜으로 한 줄.
'비 오는 날 부쳐줘야지.' 특정한 날짜도,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혼자 적어둔 메모.
비 오면 김치전을 부쳐줘야지, 라는 생각을 노트에 적어두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걸 몰랐다. 엄마가 그런 사람인 줄.
노트 중간쯤에 레시피가 아닌 글이 끼어 있었다.
종이 한 장이 접혀서 노트 사이에 꽂혀 있었다. 꺼내 펼쳤다.
날짜가 적혀 있었다.
1997년 봄. 오늘 혜원이가 학교에서 울면서 왔다.
친구한테 맞았다고. 안아줬더니 한참 울었다. 저녁에 혜원이가 제일 좋아하는 소불고기를 해줬다.
다 먹었다. 밥도 두 공기. 배부르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혜원이 아플 때마다 나는 부엌으로 간다.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1997년 봄. 내가 일곱 살이었다.
기억이 났다. 희미하게. 친구한테 맞은 날.
이유도 기억 안 났다. 울면서 집에 온 것, 엄마한테 안긴 것, 저녁에 불고기가 나온 것.
밥 두 공기를 먹은 것. 거기까지였다.
그날 엄마는 이걸 적고 있었다.
혜원이 아플 때마다 나는 부엌으로 간다.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그것밖에 없어서.
나는 그 말이 오래 마음에 걸렸다.
엄마는 항상 해주는 사람이었다.
밥을 차려주고, 빨래를 해주고, 챙겨주는 사람.
나는 그걸 당연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엄마라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한테는 그게 '그것밖에 없어서' 하는 일이었다.
다른 방법을 몰라서, 그게 최선이어서. 아이가 아픈데 아무것도 못 해주는 것 같은 마음으로, 그래도 할 수 있는 걸 했던 것이다.
무력한 마음으로 부엌에 서서, 할 수 있는 걸 했던 것이다.
나는 엄마를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가 부엌에 서 있던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게 엄마한테 어떤 의미인지를.
레시피 노트를 펼치기 전까지는.
노트 속의 엄마는 내가 알던 엄마와 같은 사람인데, 달랐다.
더 많이 흔들리고,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마음 쓰던 사람이었다.
노트를 덮었다가 다시 펼쳤다. 더 읽고 싶었다. 아니 더 알고 싶어졌다.
아직 내가 모르는 엄마가 여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