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걷는다.
부산에서 송년회를 참석하기 위해 그녀는 서울에 왔다. 송년회를 마치고 나는 감사하게도 그녀와 같은 방향의 전철을 탈 수 있었다. 온라인 세계에서 만나 친하지 않는 듯 친한 사이로, 나는 궁금했던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독서 모임을 시작할 거라는 그녀가 1년 동안 100권의 책을 읽고, '밥 프록터의 부의 확신'을 10독 했다고 했다. 한 권의 책을 10독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는 것일까? 그녀는 나랑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듯한 사람으로 여겼고 나는 내 스스로 한계를 만들었다. '난 못해'라고 선을 그었지만 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어느 날부터 '그녀의 10독'이 엄마 오리를 졸졸 따라다니는 아기 오리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너 언제 시작할 거야? 너도 해! 한 장만 읽어봐!'라고 말하는 원치 않은 내 안의 친구가 생겼다. 그리고 나도 읽기 시작했다. '그래 나도 한번 해보는 거야' 하는 마음이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는 머리가 멍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책은 언제 펼쳐질지 모른 채 자기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6개월 후 나는 결단을 해야 했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이었고 이왕 잡을 거라면 튼튼한 동아줄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펼쳐진 책 속에는 '얼 나이팅게일의 90일 동안 무언가를 했다면 남은 평생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다.'라고 적혀있었다. 나도 100일 동안 책을 읽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와 동시에 100일 걷기도 시작했다. 나의 세포 하나하나 패러다임을 바꿔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하며, 때로는 긍정 주문을 외우고 매일매일 걷기로 나를 만들어 나갔다. 같은 책을 반복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고, 많은 깨달음을 얻겠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책을 읽는 건지 책이 날 읽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매일 나 자신과 힘겨루기를 했다. 다시 펼치고 싶지 않던 책과 나의 신발은 나를 한없이 기다리고 있었고 내 안의 나도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덧 목표했던 100일로 책 속의 많은 것들이 스며들었으며, 나의 걷기도 100일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하루하루 쌓은 걷기는 멈추지 않았다. 걷기로 인해 나는 더 이상 그전에 내가 아님을 발견할 수 있었고,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무조건 신발을 신고 걷게 만들었던 걷기로 인해, 내 인생만 슬프고 불행하다고 여겼던 나의 삶에 한줄기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나를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었고, 할 줄 아는 것이 없고 자신감이 없던 나에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감사에 감사를 더하니 더욱더 내 삶이 아름답게 보였다.
오늘은 남편과 함께 걷는다. 걷기로 나의변화가 나의 가족에게도 찾아왔다. 움직이지 않고 핸드폰만 하던 남편이 '오늘은 운동안가?'하고 묻는다. 자기 계발을 시작하면서 나는 외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걷기를 하며 남편과 베프가 되었고 부부 사이가 좋으니 덩달아 아이들도 웃는다. 매일 걷기에 첫째 서준이가 엄마에게 동기부여를 해줬다. 100일 되었을 때 만 원, 200일을 채우니 두 아이가 2만원의 축하금을 주었다. 오늘은 279일째로, 300일에도 축하금 주나? 하고 기대를 하게된다. 아이들의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가족 사항 서류에 어머니, 아버지의 특기란 이 있었다. 첫째 서준이는 어머니의 특기를 '시작하면 꾸준히 하는 꾸준함'이라고 혼잣말을 하며 적는다.
어느 날 학습지 선생님이 아에게 묻는다. '지금 너 행복하니?'아이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네 전 행복합니다.'라고 말한다. 아이의 행복을 우선순위로 하는 나의 교육철학으로 아이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다. 가족이 얼굴 맞대고 함께 웃을 수 있고, 뭐든지 꾸준함과 긍정 에너지로 우리 가정에 변화를 가져온 걷기는 앞으로도 쭈욱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