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성과 중립성 너머에서

수학과 그리고 주관성

by 박지현Jihyun Park

객관성과 중립성 너머에서 — 수학과 인간, 그리고 주관성

우리는 종종 수학을 가장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학문이라고 여깁니다. 정확한 답이 존재하고, 감정이나 해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다음 문장을 읽고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There are no qualities—like, for instance, objectivity and neutrality—that automatically can be associated to mathematics.

(예를 들어 객관성이나 중립성과 같은 자질들은 수학에 자동적으로 연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문장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수학조차도 본질적으로 객관적이지 않다면, 인간은 어떠해야 할까요? 오히려 이 문장을 통해 나는 다시금 느낀다. 인간이란 존재야말로 객관성과 중립성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간의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어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는 각자의 관점, 경험, 감정, 그리고 해석 속에서 살아간다. 내가 보는 세상은 타인의 시선과 다르며, 같은 장면을 보고도 서로 다른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것은 오류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다움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입력해 놓은 AI 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 속에서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나는 좌도 우도 아닌, 중도야.”

표면적으로는 균형 잡히고 이성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하지만 곱씹어보면, 이 말은 때때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으려는 회피의 언어임을 알수 있다. 좌도 우도 아니라는 말은, 어쩌면 정치적 긴장이나 판단의 책임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려는 전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권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중립은 선택이 아니다.

진정한 주체적인 삶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와 관점을 인식하고 책임지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주관성은 혼란이나 편협함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인식과 성찰, 그리고 자신의 입장에 대한 용기 있는 고백이다.

나는 왜 이렇게 생각하는가? 나는 무엇을 지지하며, 무엇에 반대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는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수학이 인간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 인것 같다. 그것이 절대적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 안에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수식 하나에도 철학이 담기고, 증명 하나에도 인간의 시선이 스며들고 노력이 없이는 생각이 없이는 찾아내거나 증명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객관성과 중립성이라는 환상에서 더 한 걸음 벗어나다. 나 자신의 주관성과 중심성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으며 특히 내가 사고하고 쓰는 글에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기로 또 결심한다.그것은 이기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더 진실하게, 더 성찰적으로 나를 바라보겠다는 의지이며 세상에 대한 옳바른 관점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모든 일에 대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순간,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그 권리는 얼마나 소중한가?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권리가 주는 특권에 걸맞은 책임을 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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