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나는 Daily Quote 즉 하루 명언을 하나씩 읽는다. 오늘 아침 명언은 프란츠 카프카였다.
“굽히지 마라. 희석하지 마라. 논리적으로 만들려고 애쓰지 마라.
네 영혼을 유행에 맞춰 편집하지 마라.오히려, 너의 가장 강렬한 집착을 무자비하게 따르라.”
“Don’t bend; don’t water it down; don’t try to make it logical;
don’t edit your own soul according to the fashion.
Rather, follow your most intense obsessions mercilessly.”
— Franz Kafka
이 문장은 마치 나에게 직접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강렬한 문장은 곧 내가 떠올린 또 하나의 문장과 이어졌다.
드라마 속 대사 한 줄이 떠올랐다.
“악은 거침없이 달리는데, 왜 선은 늘 증명해야 하는가.”
드라마 환혼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나는 탈북자다. 나는 내가 북한에서 태여나고 또 그 땅에 환멸을 느끼며 떠나온 것을 숨기지 않는다.
그 말은 단지 국적을 넘어선 이주민이라는 뜻이 아니며 전체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싸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싸움은, 나 만 아니라 한국에 간 탈북자들도 그리고 해외에서 사는 탈북자들도 탈북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여정임을 알기에 지금도 그 아픔을 이야기 한다.
자유로운 사회에서도, 나는 여전히 ‘내가 왜 여기 있는지’를 증명하며 살아간다.
선은 왜 늘 증명해야 하는가
탈북자들은 종종 질문을 받는다.
“왜 탈북했나요?”, “그곳에선 어떻게 살았나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그 질문들은 대부분 선의에서 비롯되었겠지만, 그 아래엔 늘 이런 전제가 깔려 있었다.
“당신이 옳았다는 걸, 증명해 주세요.”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왜 선한 선택은, 왜 옳은 결정은, 늘 해명과 설명을 요구받는가?
자유를 향한 걸음은 왜 정당성을 증명해야만 존중받는가?
악은 질주하지만, 자유롭지 않다
악은 거침없이 질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도 그러하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움직이고, 모두가 시키는 대로 한다
그 체제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감시하며, 의심 없이 복종한다.
표면적으로는 단단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 체제 속 인간은 단지 전체주의의 톱니바퀴일 뿐이다.
하나가 멈추면 전체가 멈추고,
하나가 깨지면 모두가 무너지는 비자율적 기계 구조다.
그 안에는 ‘자유’도 없고, ‘존엄’도 없다.
그들은 질문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빠르게 달리지만, 결코 자유롭게 나아가지 않는다.
선은 느리지만, 단단하다
반대로, 선은 늘 증명해야 한다.
왜냐하면 선은 자기 생각으로 움직이고, 자기 판단으로 결정하고,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선은 복잡하고, 때로는 의심받고, 항상 설명해야만 비로소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 느린 걸음은 결코 헛되지 않다.
나는 지금도 증명하며 살아간다.
내가 왜 떠났는지, 왜 살아남았는지, 왜 이곳에 있는지를.
그 증명은 불편하지만, 동시에 내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Stuff to try the soul’s strength on”
5대 철학자들 인생 이라는 책 한구절에 이런 말이 있다.
“Stuff to try the soul’s strength on.”
영혼의 힘을 시험하게 만드는 재료들.
탈북이라는 여정, 증명하며 살아가는 오늘, 편견과 침묵에 맞서는 매 순간이바로 나의 영혼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시험하는 재료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시험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말하고, 기록하며 살아내고 있다.
Kafka는 말한다.
“영혼을 유행에 맞춰 편집하지 마라.”
나는 유행에 맞춰 나의 기억을 줄이지 않을 것이다.
전체주의가 침묵시키려 했던 것들을
나는 말할 것이다.
나는 탈북자다. 그리고 나는,
자유와 진실을 위해 오늘도 살아내는 중이다.
당신은 무엇을 증명하며 오늘을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