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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현Jihyun Park Nov 22. 2023

가족의 소중함 3

북한에는 가족이 존재할까?

아버지와 어머니 결혼 이후 어머니는 시 아주버님과

시 동생들을 극진히 돌봐왔다.


어머니는 시 어머니와 함께 살지는 않았지만 할머니가 집에 오시면 무서웠다고 웃으시면서 이야기한다.

북한 아파트는 방 하니 혹은 두 칸짜리인데 들어는 문 옆에 화장실이 있고  반대편에 부엌이 있는 구조이다


부엌과 방 연결사이네는 킨 막이가 있고 작은 창문이 있는데 여기를 배식구라고 불렀다. 어머니들이 부엌에서 밥을 하고 배식구로 밥과 국을 올려 놓으면 받아서 방안에 밥상에 올려놓고 밥을 먹는다.


할머니는 우리 집에 오면 바로 가마목에 앉아서 배식구 문을 열로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무섭기고 한 할머니지만 자식들에겐 정이 많은 특히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내놓은 그런 강한 여인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힘들어한다고 나와 언니 모두 유치원 갈 때까지 키워주셨다.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집에 놓여있던 나무관, 그리고 그 안이서 풍겨 나오는 이상한 냄새는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고 할머니는 왜 나무관 안에 계실까 하고 혼자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할머니 가신 후 우리에겐 외증조할머니가 계셨고 외할머니가 있었는데 사실은 어머니의 삼촌 어머니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우리가 외할머니로 부르게 하셔서 난 중학교 다닐 때까지 그분이 어머니흫 낳아준 분인 줄 알았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에 대해 이야기 안 해주었고 우리가 중학교 되던 시기 어머니 고향 사람이 외할머니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외할머니는 훗날 재가( 다시 결혼하여) 세 자녀를 낳았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이 사망 후 혼자 지낸다는 소식이었다.


어머니는 그 당시에도 본인 어머니를 만나기를 거부하셨고 나와 언니가 처음으로 장거리 여행을 떠나 외할머니 집에 갔는데 정이 느껴지지는 않았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어머니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던 시기 언니가 고등학교 졸업하는 시기가 왔는데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던( 그 당시 북한에는 컴퓨터가 없고 수학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 언니가 과학자로 뽑혀 가기로 했다. 그리고 군복까지 입었던 언니였는데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여왔다. 갈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실력이 출중했던 언니였기에 우리는 무엇이 문제일까 혹은 키가 작아서 불합격일까 하고 오만가지 생각을 했는데 우리 부모님들은 왜 탈락을 했는지를 미리 알고 계셨다.


어느 날 아버지는 우리를 모두 앉혀놓고 어머니애 대해 이야기 해주는데 나는 모든 것이 까맣게 내 앞날이 없어진 것 같아 슬퍼서 울고 또 울고 ,,,

그리고 우리는 우리 어머니를 얼마나 원망하고 원망했는지,,, 가족이라면 당연히 어머니 잘못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어머니를 안아 드려야 했지만 북한 시스템은 가족의 인간애 마저 허락하지 않은 비참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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